피부색 다르다고 못생겼다고 손가락질 하는 세상에 빗자루 든 녹색 마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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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호 06면

내한공연 뮤지컬 ‘위키드’에서 녹색 마녀 엘파바 역을 맡은 제마 릭스.

으레 모든 전래동화가 그렇듯 미국의 고전인 ‘오즈의 마법사’도 권선징악으로 끝난다. 밑도 끝도 없이 사악하고 못생긴 녹색 마녀는 도로시를 괴롭히다가 제대로 응징을 당한다. 우리 한번 짝다리를 짚고 삐딱하게 오즈의 나라를 들여다 보자. 도대체 왜 텍사스에서 잘 살고 있던 도로시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오즈의 나라에 떨어졌을까? 무엇보다 녹색 마녀는 원래부터 사악했던 걸까?

첫 내한 공연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의 엘파바

지난달 31일부터 내한공연을 시작한 미국 브로드웨이 최고 흥행작 ‘위키드(Wicked)’는 ‘오즈의 마법사’가 구축해 놓은 견고한 세계에 반기를 들며 시작한다. 스토리의 빈틈을 짓궂게 파고들어 권선징악의 판타지를 깨뜨려버린다. 그리고 그 중심엔 녹색 마녀 ‘엘파바’가 있다. 엘파바의 비극은 남들과 다름에서 시작됐다. 사실 명석한 두뇌에 우직하고 넓은 마음을 지녔지만 피부색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소수자의 상처를 잘 아는 엘파바는 동물 탄압정책에 반대해 이를 해결해 달라며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마법사는 되려 엘파바가 가진 능력을 이용해 동물들을 더 탄압하려 들고, 엘파바는 이에 대항하며 도망친다. 남은 것은 치부를 들켜버린 마법사의 보복뿐이다. 그는 엘파바를 ‘사악한 마녀’라고 공표하고 수배령을 내린다. 오즈의 주민들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를 나쁘다고 믿어버린다. 왜? 못생긴 녹색 마녀이니까. 이 작품이 2003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후 9년째 흥행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춘향전’을 비튼 영화 ‘방자전’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와 비슷하다. 누구나 잘 아는 고전을 비틀어 통념을 거슬러 보려는 묘미가 있고, 겉모습에 현혹된 우리들의 오만함을 까발려 보려는 발칙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엘파바는 불쌍한 동물을 모른 체하고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마법사를 도와 한몫 챙기고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악한 마녀로 매도될지언정 옳다고 믿는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 도덕적 신념보다는 편의와 이익에 따라 갈아타는 것이 쿨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엘파바의 행보는 생경한 울림이 있다.
가장 미국적인 동화에서 시작했지만, 이 작품이 보편성을 가지면서 세계적인 흥행몰이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블록버스터급의 무대와 아름다운 멜로디, 오랜 기간 글로벌 투어로 다져진 배우들의 호연은 덤이다. 과연 사악한 마녀도 도로시처럼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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