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명절 특집프로들 확 바뀌어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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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대이동은 올해 설 연휴에도 생생하고 유장하게 이어졌다. 중계차에 헬기까지 동원해 TV 뉴스는 귀성.귀경 풍경을 종횡으로 중계하기에 바빴다.

민족의 반 이상이 그 난리를 치며 이동하는 속사정은 평소에 못 보던 그리운 얼굴을 만나자는 것일텐데 텔레비전이 마련한 특집메뉴는 여전히 그 밥상에 그 반찬이었다.

솔직히 이런 식의 잔소리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이라는 생각 때문에 망설여진다. 싸잡아서 말하기의 오류도 염려된다. 제작여건 다 알면서 입장이 바뀌었다고 금세 얼굴 바꾸느냐는 책망을 들을 법도 하다.

다만 시청자의 불만에 대해 '재미있으면 됐지 뭘 더 바라십니까' 라는 말에 대해서만 대꾸해 볼 참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솔직히 재미가 없다.

적어도 특집이라면 내용이나 형식 중에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하는데 나오느니 그 얼굴이 그 얼굴에 보여 주는 재주마저 똑같다. 어쩌면 저렇게 한결같을까. (당사자의 인내에 경외감이 들 정도다)웃음에 앞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음식으로 비겨 말하자면 식상하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바꾸지 않는 기업에 미래가 없다고 하는데 실은 방송도 마찬가지다. 속쓰린 표정으로 늘 제작여건을 말하는데 도대체 그 속상하게 만드는 여건이라는 게 무언가.

이제 그 '여건' 을 바꾸어 보자. 특집이라면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따로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제작진은 말한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그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어라. 인력이 부족하다고? 그 비슷비슷하다 못해 제목까지 헷갈리는 프로그램 수를 확 줄여라. 3분의 1만 남기고 나머지는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투자하라. 3분의 2는 무엇으로 채우냐고?

좀 힘(시간과 돈)이 덜 드는 차분한 포맷의 '세상사는 이야기' 들로 채워라. 시청률이 걱정된다고? 스타의 '개인기' 에 의존하는 그 숱한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과연 얼마나 나오는지 냉정히 따져 보라.

안일하게 시청률 올릴 생각을 집어치워라. 제작진은 책도 읽고 연극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서 새로운 세상의 욕구가 무언지 감 좀 잡아라. 무엇보다 스스로 시청자가 되어 남이 만든 프로그램들도 좀 보기 바란다. 자신이 하는 노동의 진정한 가치와 생산성을 한번 헤아려볼 일이다.

지겹도록 얼굴을 비치는 연예인의 입장은 또 어떤가. 그들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도 좀 쉬고 싶다. 그러나 제작진의 회유와 강요를 못 본 체 넘기기에는 나의 기반이 취약하다. 괜히 건방을 떨다가 이 바닥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매니저는 뭐하는 사람들인가. 그들이 자중자애할 수 있도록 시간표를 길게 잡아라. 편성이나 기획하는 이들은 제작진의 매니저격이다.

그들도 길게 볼 줄 알아야 한다. 모두의 입장이 존중되고 모두가 행복해 할 만한 시간표를 짜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지금 당장 추석특집팀을 가동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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