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온 부산 빵집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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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31일로 개점 두 달을 맞는 롯데백화점 평촌점에서는 작은 이변이 일었다. 두 달간의 구매 고객 수와 면적당 매출을 집계해 보니 이 백화점 지하에 들어선 빵집 ‘옵스(OPS)’가 고객 수 1위, 면적당 매출 2위를 차지한 것. 가전제품·수입화장품·SPA 의류 브랜드를 제치고 세운 기록이다.

 옵스는 달로와요·르노트르·포숑 같은 유럽계 베이커리가 아니다. 1989년 부산시 남천동에서 ‘삼익제과’로 창업해 94년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부산·경남에 9개 매장을 보유한 ‘부산 갈매기 빵집’ 브랜드다. 수도권 첫 매장인 옵스 롯데 평촌점은 개점 첫 달인 올 4월 3억6000만원어치 빵을 팔았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이는 웬만한 서울 중심가 백화점의 해외 명품 의류·잡화 브랜드 매장 판매액을 넘는 수준이다. 부산 빵집이 수도권에 상륙해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롯데 평촌점 옵스 매장에서 만난 김상용(49·사진) 대표는 “지난 23년간 빵에 대한 신념을 뚝심으로 밀어붙인 게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프랜차이즈 빵집과 달리 냉동 생지(반죽)를 전혀 쓰지 않고 모든 빵을 그때그때 굽는 것 등이다. “냉동했다 녹인 것은 빵이라 부를 수 없다”는 김 대표의 지론이다. 영양소가 파괴된다는 이유다. ‘기계로 찍어 내는’ 빵도 없다. 가장 흔한 품목인 식빵도 기계틀을 사용하지 않고 반죽부터 굽는 과정까지 100% 사람 손으로 한다.

 재료 선정도 고집스럽게 한다. 김치고로케 한 종류를 만들기 위해 직접 밭에서 배추를 길러 김치를 담그고, 소보로에 넣을 무화과잼은 전남 영암의 농장에서 직접 키운 무화과로 만든다. 쿠키에 넣을 호두도 손질된 제품을 사지 않고 껍질째로 사들여 직접 망치로 깨서 알맹이를 꺼내 쓴다.

 옵스의 경쟁력에는 또 다른 비결이 있다. 독특한 인사 고과와 정년 시스템이다. 300여 명의 직원을 5단계 고과를 매겨 관리한다. 고과 시스템을 탄탄하게 갖춰 직원들의 자기 계발 욕구를 자극하는 기업에 버금갈 정도다. 정년은 55세다. 하지만 정년이 지나도 고과 5단계 중 상위 3단계에 들면 퇴직하지 않고 계속 일하게 한다. 급여는 정년 전과 똑같다. 이 제도 때문에 현재 옵스에는 60세가 넘은 빵 제조 인력이 상당수라고 한다. 김 대표는 “숙련된 기술자들이 정년을 넘어서도 계속 일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한다”며 “자연히 빵과 과자의 질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롯데 평촌점을 통한 수도권 입성은 2009년 롯데백화점 광복점, 2010년 울산점에 차례로 입점한 인연에서 비롯됐다. 여기에서 월 매출 2억~3억원씩을 올리자 롯데백화점과 옵스는 지난해 4월부터 평촌점 진출을 논의했다. 평촌점은 인테리어 비용을 롯데가 부담했다. 이종언 롯데백화점 식품MD는 “프랜차이즈 일색에 질린 소비자들이 장인정신이 있는 전문 빵집에 큰 호응을 보내고 있다”며 “옵스와 서울의 기존 점포 입점 논의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옵스가 ‘지역 빵집 1호’로 성공하자 다른 토박이 빵집 입점도 활발해졌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롯데몰 김포공항점에는 인천에서 이름이 높은 안창현 명장의 ‘안스 베이커리’가, 같은 달 롯데백화점 대전점에는 50년 대전 토박이 빵집인 성심당이 들어섰다. 이들은 각각 월 평균 1억5000만원, 1억8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평촌=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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