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5월의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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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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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童話 - 슈퍼문  - 이창규





저 달, 햇덩이마냥 커져 버린 어느 날
남몰래 몸을 불린 속사정 알아챘는지
산번지 달 뜨는 언덕 넉살 좋게 휘었다
가난한 저녁 무렵 찬물로 허기 지우며
스무고개 넘어가던 먼 옛날 이야기 속
토끼도 계수나무도 몸피 꽤 늘린 세월

봄밤 지루하다 수런거리는 시장 모퉁이
좌판 위 흘러가는 달빛 새긴 문장으로
희망을 부풀려 쓰는 동화 한 편 떠있다

◆ 이창규=1963년 충북 제천 출생. 충북도청 산림녹지과 근무. 2011년 제14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금상 수상. 충북시조문학회원.






차상

뉘 고르는 어머니  - 김수환

이 달을 넘기면 까맣게 닫히고 말리
베란다 그물망 늦봄의 감자 눈
맹렬히 새파란 독을
밀어 올린다
제 몫이다

나는 꽃도 아니고 다육이도 아니야
너 하나 살리려고 온 마음을 버렸네
사력을 다하고 다해
쪼그라든 몸
눈부시다

무엇을 입어도 이제는 다 헐겁다
잡으면 바스러질 듯 푸석이는 몸뚱이
베란다 저쪽에 앉아
생의 뉘를 고르고 있다



차하

늦깎이의 시 -김현수

모판 같은 일절지에
씨나락 같은 스물네 자

모음 자음 내 기억에
모내기 하는 글내기

깎아 쥔
꼬챙이 끝에
검은 피의 꽃이 핀다



이 달의 심사평

희망과 현실의 간극 보여준 역작

시조는 형식 장치를 잘 활용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럴 때 형식은 날개가 된다. 그런데, 응모작 중에는 날개가 아닌 무거운 짐을 진 듯한 작품이 많다. 시조의 형식적 장점을 잘 살리는 창작에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

이창규 씨의 ‘동화-슈퍼문’을 이번 달 장원으로 가린다. ‘희망을 부풀려 쓰는’에서 읽히듯, 부풀린 희망과 좌판 위 현실 사이의 간극이 슬픔으로 휘어지는 역작이다. ‘찬물로 허기 지우’던 가난한 시절의 기원은 ‘몸피만 꽤 늘린’ 슈퍼문으로 한편의 동화처럼 오늘 우리들 가슴에 떠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차상은 김수환 씨의 ‘뉘 고르는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어머니는 정성을 다해 뉘를 골랐다. 좋은 쌀을 얻기 위함이다. 그것은 ‘너 하나 살리려’는 의지요, 헌신이다. ‘잡으면 바스라질 듯 푸석이는’‘쪼그라든 몸’은 그 결과다. 그러니 ‘무엇을 입어도 이제는 다 헐’거울 수밖에 없는 어머니다. 차하로 고른 김현수 씨의 ‘늦깎이의 시’는 한글로 빚는 시를 벼농사에 빗댄 깔끔한 단시조다. ‘깎아 쥔 꼬챙이 끝에 검은 피의 꽃이 핀다’는 종장이 시의 선명한 이미지를 확보하고 있다. 축하드린다.

심사위원=권갑하·강현덕(대표집필 권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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