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다시 들이닥친 ‘악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2호 31면

15일 놈이 돌아왔다.
여기저기 경계령이 발동됐다. 우선 1996년과 2000년 그를 만난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그놈 때문에 몸무게가 10㎏이 늘었다” “그놈 때문에 첫사랑과 헤어졌다” “그놈 때문에 재수를 했다”. 다양한 증언과 경고가 트위터 등 각종 SNS를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롤플레잉게임(RPG) ‘디아블로(Diablo·악마) 3’ 얘기다.

On Sunday

12년 만에 새롭게 출시된 디아블로3는 전 세계 동시 발매 후 24시간 만에 350만 개가 팔렸다. 24일까지 최소한 750만 명이 이 게임을 했다고 한다. 특히 한국에서의 열기는 디아블로의 마지막 레벨인 지옥불(인페르노)만큼 후끈거린다. 지난 14일 서울 왕십리역사광장엔 한정판을 구하려는 게이머 5000여 명이 모여 비 오는 밤을 꼬박 새웠다. 이 게임은 인터넷으로 내려받아서도 할 수 있지만, 한정판엔 게임 캐릭터가 장착할 수 있는 날개 등 부록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9만5000원인 한정판은 일반판이나 디지털판보다 4만원이나 비싸지만 순식간에 동이 났다. 현재 판매가의 세 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된단다.

마트 등에서 판매하는 일반판도 구하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게임 출시 40시간 만에 최고 레벨을 통과한 인증 사진이 SNS를 타고 전파됐다.
PC 방은 방마다 호황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PC 방 이용자의 39%가 디아블로3를 하고 있다고 한다. PC 방 이용자 3명 중 한 명이 악마 사냥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디아블로가 뭐기에 이 난리일까.

96년 말, 미국 게임 회사 블리자드에서 출시한 디아블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기존의 컴퓨터 게임과는 달리 게이머끼리도 겨룰 수 있도록 한 대결 구도, 아이템 거래 등 현재 대부분의 RPG 게임이 적용하고 있는 법칙들은 디아블로로부터 나왔다. 버전마다 그래픽이나 스토리 배경 등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야만용사, 부두술사, 마법사, 수도사, 악마사냥꾼 등 다섯 가지 직업 중 하나를 택해 싸우면서 레벨을 올려간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내공이 쌓이고 내공이 쌓일수록 멋진 캐릭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최종 목표는 악마, 즉 디아블로를 물리치는 것이다. 한 번 시작하면 그만둘 수 없을 정도로 중독성이 강해 게임 자체가 악마라는 설명도 꼭 따라다닌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악마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이 게임에 빠졌던 20대들은 어느새 중년이 됐다. 디아블로3 열풍의 상당 부분은 “그땐 그랬지”라며 매장으로 달려간 디아블로1, 2의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70년대 대학을 다닌 이들이 젊은 시절을 함께한 쎄시봉 가수의 귀환을 반가워했듯이 말이다. 30대가 된 디아블로 플레이어들은 한정판의 비닐을 뜯으며 비슷비슷하지만 제각기 소중한 저만의 추억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일탈은 “회사에 아프다고 하고 디아블로 하고 싶다”고 호소하는 정도다. 아마도 한두 달 정도 몰두해 기세 좋게 ‘만렙(최고 레벨)’을 찍고 디아블로4가 나오기 전까지 다시 추억으로 간직할지도 모르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