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칼럼] 왼쪽 여자의 오른쪽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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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성 유혹법' 기사를 열심히 읽고, 여자는 '남성 유인법' 기사를 열심히 읽는다. 각자 이론 학습을 마친 뒤 실전을 위해 거리로 나간다. 길모퉁이에서 마주친 남자와 여자는 교본대로 행했다. 그러자 여자가 냅다 남자의 따귀를 올려붙이는 것이었다.

설명은 없지만 피차 유혹하는 기술만 배우고, 유혹당하는 태도는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었을까? 프랑스의 만화가 장-자크 상페가 그린 삽화의 한 대목이다. 부조리의 해학을 바탕으로 그가 그린 단순한 필치의 만화는 〈렉스프레스〉와 〈파리 마치〉등에서 많은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낯선 도시의 익숙한 그대

지금 어디 가서 만화 찾을 나이도 아니고, B형의 소개와 권유가 없었다면 솔직히 나는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대만의 작가 지미(幾米)가 쓰고 그린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청미래, 2000)가 그것인데, 원제 〈向左走 向右走〉가 던지는 투박한 선입견과는 달리, 글과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대하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그 해 겨울은 몹시 추웠고, 축축한 공기가 온 도시를 짓눌렀다" 로 시작하는 상황 설정은 사뭇 불길하다.

여자는 교외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며, 외출할 때면 "목적지가 어디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습관적으로 왼쪽으로 걸어갔다." 남자 역시 교외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며, 외출할 때면 "목적지가 어디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습관적으로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니 그들이 만난 적이 없을 것은 너무 당연하다.

남자는 시내의 레스토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돈을 버는데, 일이 없는 날은 공원의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져주면서 오후를 보낸다. 여자는 비극적인 소설을 번역하는 중이며, 쉬고 싶을 때는 시내로 나가 커피를 마시고 길가의 도둑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는 자주 무력감에 젖고, 여자한테는 사는 것이 아무 재미가 없다.

아니 이 따분한 '신파' 타령을 대체 언제까지 계속할 거야□ 인내심 폭발 일보 전에 "수많은 우연의 일치가 숨어 있는 것이 인생이니 두 평행선은 어느 날 만날 수도 있다" 는 내레이션과 함께 장면이 바뀐다. 12월 22일 공원의 원형 분수대가 줄곧 반대쪽으로만 걷는 이들을 마주치게 했기 때문이다. 왼쪽 여자의 오른쪽 남자가 된 것이다!

이 날의 그림이 이 책에서 가장 밝고 힘차다. 남자는 억지 광대 짓으로 여자를 웃기고, 여자가 흉내내는 엉터리 바이올린조차 남자한테는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나른한 풀밭에서 나눈 달콤한 대화며, 오랜만에 밟아보는 회전목마의 유희며 그들에게 "겨울이 다시는 음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해질녘에 갑자기 큰비가 쏟아지자 그들은 서둘러 전화 번호를 적은 뒤 남자는 오른쪽으로, 여자는 왼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인생에는 수많은 뜻밖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손에 쥐고 있는 연의 연줄이 갑자기 끊어질 수도 있다." 비극의 탄생은 12월 23일이었다.

전화 번호가 빗물에 번져 전혀 읽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울리지 않는 전화통만 붙잡은 채, 지독한 슬픔으로 성탄도 보내고 제야도 보냈다. 이제부터는 독자가 바빠질 참이다.

도대체 언제 만나게 하려는 거야? 결론이야 뻔한 거 아냐. 이쯤 해서 즐겁게 끝내자구. 그런데 그런 기미조차 안 보인다.

이듬해 봄 도로 공사로 공원의 분수대가 파괴되고, 밸런타인 데이가 유난히 서러운 여자에게 "이 익숙하지만 낯선 도시에서, 낯설지만 익숙한 그대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여름의 번개와 폭풍이 싫고, 가을의 엷은 안개와 단풍도 귀찮다.

고독한 연인들의 소식은 들을 길이 없는데, 어느덧 겨울이 지나간다. 선량한 독자들은 이 잔인한(?) 심성의 작가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게 된다.

마침내 12월 23일 비극 1주년에 그들은 이 차갑고 황량한 도시를 떠나기로 작정한다. 각기 집을 나서서 남자는 예의 그 습관대로 오른쪽으로, 여자는 왼쪽으로 간다.

어허, 출입문이 다를 뿐 그들은 같은 아파트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한번만 딱 한번만 발걸음을 바꾸었던들 서로 마주쳤을 텐데…. 그들은 여지껏 같은 층의 이웃 방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옆 방에서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가 자신의 생일 축하 선물이라고 여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남자 역시 여자가 그 소리를 들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두 방을 갈라놓은 육중한 벽에 구멍이 뚫리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책은 끝이 나지만, 그들이 다시 만났다는 소식은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아픔이 주는 삶의 넉넉함

작품 못지 않게 작가의 사연이 독자를 울린다. 지미한테 '실제로' 백혈병 진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항암 투병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고, 귀한 딸을 낳아 생명에의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전에 나도 고약한 병으로 수술을 받고 나서, 남은 시간 동안 남을 사람들한테 무슨 기억을 남겨줄까 하고 꽤나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그의 그림을 다시 보려니 획 하나, 선 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저 눈발과 촛불은 무엇을 생각하며 그렸고, 저 나뭇잎은 어린 딸에게 무슨 얘기를 전하려는 것일까? 지미는 상페한테서 용기를 얻었다고 했지만, 그림 뒤에 숨은 이런 지독한 아픔이 따귀 대신 독자한테 삶의 넉넉함을 나눠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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