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대우 임원들, 줄줄이 벤처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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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함과 튀는 개성, 형식 파괴 등으로 종전의 산업계와 큰 차이를 보이던 벤처기업들이 옛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벤처기업을 경영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창의적인 것, 효율적인 것을 찾다 보니 굴뚝기업들의 유산과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 벤처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자유분방함과 톡톡 튀는 개성, 형식 파괴 등으로 종전의 산업계와 큰 차이를 보이던 벤처기업들이 하나 둘 ‘뒤로 내쳤던’ 옛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고 과거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벤처기업을 경영해 오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창의적인 것, 효율적인 것을 찾다보니 굴뚝기업들의 유산(遺産)과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오프라인 출신의 인물을 CEO로 영입하는 것에서부터 조직·사내 문화에 오프라인 업체의 관례를 도입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온·오프라인의 적절한 조화는 벌써부터 시너지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승림 사장은 삼성중공업 부사장 출신

지난 2일 인터넷 화상회의 솔루션 개발업체인 이엠밸리(http://www.emvalley.com)는 오프라인 경력의 황 진씨(53)를 신임 사장으로 영입했다. 신임 황사장은 경기고,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LG전자를 거쳐 큐닉스컴퓨터 상무, 테라 부사장 등을 거친 전형적인 오프라인 업체 출신.

지난 해 3월 설립된 이엠밸리는 그동안 온라인 위주로 사업을 전개해 오면서 나름대로 한계를 겪어 왔다. 따라서 오프라인과 해외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것. 그러던 중 20여년간 오프라인 업체에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온 황사장을 만나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벤처기업 CEO로는 다소 많은 나이에도 불구, CEO로 황사장이 전격 영입된 것이다.

황사장의 영입으로 그동안 사장직을 수행해 오던 오민석씨는 개발담당 부사장으로 물러나 솔루션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이엠밸리의 한 관계자는 “전임 CEO가 개발에 치중하다 보니 아무래도 조직적인 부분이나 마케팅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부터는 전문 경영인이 합류한 만큼 경영 측면과 기술 개발 측면 모두에서 훨씬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오민석 부사장은 개발된 솔루션을 기술적으로 보완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디지털 데이터 방송 솔루션 업체 알티캐스트(옛 포디엘 ·www.altikast.com)도 오프라인 출신 전문경영인을 새로 영입한 케이스. 알티캐스트 측은 지난 해 10월 지승림(51) 전 삼성중공업 부사장을 CEO로 영입했다. 지난 74년 삼성중공업에 입사한 지사장은 80년대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보냈다. 지난 99년 미국 스탠포드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거친 그는 2000년 초 삼성중공업 부사장직으로 삼성에 복귀한 전형적인 오프라인 출신 인물이다.

지사장이 새로운 CEO로 알티캐스트에 합류하면서 그동안 사장직을 맡아왔던 김문영씨는 경영지원본부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알티캐스트의 기획실 관계자는 “디지털 데이터 방송 분야는 아직 시장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실정”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마케팅과 조직관리에 뛰어난 인물을 찾던 중 지승림 사장을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사장의 합류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영업에서도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보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벤처기업으로 옮길 결심을 하게 됐다”는 지사장은 “알티캐스트 제품을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 진출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기술력이 뛰어나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알티캐스트는 포항공대 출신 엔지니어들이 주축이 돼 지난 99년 2월 설립한 업체로 데이터 방송에 필요한 저작도구·서버·소프트웨어 기술 일체를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 한 것으로 유명하다. 디지털 위성방송을 시청하면서 각종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 쇼핑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데이터방송의 시장은 세계적인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국내 대표적인 엔터프라이즈 미들웨어 전문업체 티맥스소프트도 지난 해 7월 대우증권 손복조 상무(50)를 공동대표로 영입했다. 손사장은 배재고, 서울대를 졸업하고 율산실업, 동해통상을 거쳐 지난 84년 대우증권에 입사,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99년 상무로 승진한 인물이다.

지난 해 6월 말에는 또 팬택이 삼성전자에서 휴대폰 사업을 이끌면서 애니콜 신화를 만들어 낸 이성규씨(48)를 CEO겸 연구소장으로 영입, 삼성전자 측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벤처기업들의 오프라인 요소 도입은 인물 영입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내 각종 제도에도 오프라인 유산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칼 출근’, ‘칼 퇴근’

지난 99년 메디슨에서 분사한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제공(ASP) 사업 및 기업정보 포털 서비스 제공업체 아이티벤처(http://www.itventure.co.kr). 이 회사 직원들은 오후 5시 50분 정도만 되면 손놀림이 분주해진다. 이들은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책상을 서둘러 정리한 후 6시 땡! 하면 미련 없이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다른 벤처기업들은 한창 일할 시간에 말이다.

이 업체는 ‘칼 출근 칼 퇴근’을 고집하고 있다.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이 탄력적으로 출·퇴근 시간을 운용할 때도 아이티벤처는 오후 6시면 모든 직원들을 퇴근시켰다. 출근 시간은 당연히 오전 9시.

이 회사 신동협 사장은 “일을 오래 한다고 해서 능률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며 “정확하게 업무 마치는 시간을 정한 후부터 직원들의 사기가 한층 더 진작됐다”고 말했다.

아이티벤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업무와 관련된 논문을 공모, 시상하는 등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여주기 위한 다양한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챌(http://www.freechal.com)도 다양한 오프라인 업체의 문화를 받아들여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이 아는 인맥을 통해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에 비해 프리챌은 철저하게 공채라는 공식적이고 대대적인 방법을 통해 새로운 인물을 영입한다.

공채 1기, 2기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신입사원 연수도 철저히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을 해나가면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업무지식을 전수하고 또 함께 공유한다. 또 ‘사수제’를 도입해 기존 사원이 신입사원을 한 명씩 맡아 책임지고 일을 가르치며 업무를 인계하는 방식의 오프라인 기업 교육 방식도 채택하고 있다.

프리챌 전제완 사장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직원들간 유대감을 강화, 업무간의 연계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챌은 팀별 유대감 강화를 위해 ‘조직 개발 훈련’이란 대기업 팀워크 강화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함께 스키를 타러 가거나 여행을 떠나 며칠 간 같이 먹고 뒹굴면서 친밀감을 강화하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 업무를 원활히 처리해 나가는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한편 이 회사는 지난 해 12월 초 돼지머리를 앞에 놓고 사업 번창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인터넷 포털업체 라이코스(http://www.lycos.co.kr)는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매월 1, 3주 토요일 오전 9시30분부터 구내식당에서 외부 강사 강연을 듣는다. 강사들은 모두 오프라인 기업가들. 이들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들으며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결국 조화다. 옛것과 새로운 것이 서로 녹아들 때 질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벤처업계가 위기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 동안의 시행착오와 경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시각으로 주위를 바라볼 때 벤처업계의 활로는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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