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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젊은남자' 의사·간호사도 아닌…충격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의 업무는 엄중하다. 아무리 사소한 의료행위라도 의료인의 손길을 거쳐야 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경기도의 일부 도립의료원에서는 공익요원이 중환자실과 수술실을 수시로 드나든다. 일부에서는 ‘의료행위’를 떠맡는 경우도 있었다. 월간중앙이 그 실태를 고발한다.

평일 오전시간에 찾아간 경기도의 한 A도립의료원. 이른 시간이었지만 병원 로비는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창구 직원들은 밀려오는 환자들의 접수를 받느라 부산하고, 이따금씩 비치는 의료진들의 발걸음은 바빠 보였다.

[현장고발] 수술실의 위태로운 공익근무요원들
#수술실의 잔해 제거부터 중환자의 #가래빼기까지 ‘의료행위’에 동원… #병원들은 “인력난 심화 탓”이라고 변명

그 순간 의료진 틈 사이로 차트를 들고 이곳저곳을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복차림의 젊은 남성이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병원 곳곳에 그와 비슷한 차림을 한 젊은 사람들이 잰 걸음으로 오간다. 그들은 하나같이 ‘분주한’ 모습이다.

쉴 새 없이 움직이던 그들은 점심시간이 돼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는 듯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병원 밖에서 쉬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가 “병원 직원이냐”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중 한 젊은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다들 직원인줄 알지만 우린 ‘군인’이에요.”

알고 보니 이들은 이 병원에서 복무 중인 ‘공익근무요원’이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한 공익근무요원이 말을 이었다.
“말 마세요. 여기 공익근무요원들 다 죽어나요. 일반 직원보다 일이 갑절로 많다니까요?”
그들은 이 병원에서 무슨 일을 하길래 볼멘소리를 하는 걸까? 일반적인 행정업무 수준 아닐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선 의료진이 감당해야 할 업무까지 맡는다고 대답했다.
“응급실, 기록실, 내시경과, 중환자실, 수술실 등 공익근무요원이 없는 곳이 없어요. 중환자실에는 아예 의료진처럼 가운을 입고 들어갑니다. 말이 환자 간병업무지 의료기기 소독부터 환자를 옮기는 행위 등 의료진이 할 일을 다하고 있어요.”

‘의료행위’에 내몰리는 공익근무요원
그가 화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에는 한 공익근무요원이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눕히다가 뇌가 심하게 손상된 환자의 머리를 잘못 만져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어요.” 공익근무요원이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해 벌어진 실수였다고 했다. “그 친구 말이 환자 머리를 만졌는데 갑자기 양쪽 눈에서 피가 쏟아졌다고 해요. 순간 정신이 ‘멍’해지면서 겁에 질렸다고 하는데,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죠.”

그는 “다행이 곧바로 의료진의 응급조치가 이어졌고,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만큼의 큰 사고가 아니어서 탈없이 넘어갔지만 실수를 저지른 공익요원은 타 부서로 이동해야 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의료진이 아닌 일반인이 환자의 병세를 알아차리고, 그에 걸맞은 조치를 취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거기다 일반인은 물론 보호자의 출입조차 통제되는 중환자실을 일반인과 다름없는 공익근무요원이 아무런 제약도 없이 출입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단순한 출입에서 그치지 않고 환자의 건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병원에서는 이런 ‘몰상식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공익요원들의 충격적인 진술은 계속 이어졌다.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의 간병 업무를 담당한다는 한 공익요원은 “얼마 전엔 환자에게 ‘석션’(호스로 가래 빼기)도 했다”면서 “정작 그 일을 해야 할 의료진은 자리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순간적으로 호스를 잘못 삽입해 환자를 다치게 하면 어쩌나 맘을 졸였다”며 당시의 아찔한 상황을 떠올렸다.

사전에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는지 묻자 그는 “전혀 없었다”고 대답했다. 의료기기를 소독하는 일로부터 환자를 일으키고 옮기는 일, 심지어는 석션까지 모두 의료진 어깨 너머로 체득하게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사전교육의 유무를 떠나서 이들의 업무가 명백히 ‘의료법 위반’이라는 점이다. 사전교육이 있었다 해도 의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에게 사소한 의료행위라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현재 의료법 제 27조 1항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해놓았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의료행위’라고 정확하게 명시하지는 않았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의료법에 ‘무엇이 의료행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조항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의료진이 아닌 일반인이 보건 위생상 환자에게 영향을 끼쳤을 때 이를 의료법 위반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의 설명은 더 구체적이다. 그는 “난이도에 따라 일반인이 숙지할 수 있는 간단한 의료행위도 있다”면서 “다만 이때는 안정성이 확보되고, 의료진의 감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 의료진의 감독이 따른다면 일반인의 의료행위가 때에 따라서는 허용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경환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의료팀)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그는 “의료진의 감독 하에 있더라도 일반인이 의료행위를 하는 건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의료진이 아닌 자가 환자의 공중위생에 위해를 끼치는 행위를 한다면 이는 모두 의료법 위반 행위라고 봐야 합니다. 석션, 산소호흡기 착용, 드레싱 등 간단한 의료행위는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선 단순한 안마도 의료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법원의 판례도 이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2004년 4월 서울 K병원에 속해있던 의사는 당시 병원에 복무 중인 공익근무요원에게 의료행위를 맡긴 사실이 적발돼 보건복지부로부터 의사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다. 당시 그 의사는 2002년 6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의료관련 전공을 한 공익요원 3명에게 깁스 고정이나 상처소독 등의 의료행위를 맡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면허정지 처분을 부당하다고 여긴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이에 서울행정법원 행정 5부는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렸다.

“원고가 공익근무요원들에게 맡긴 의료행위는 단순 의료보조가 아니라 의사나 의료기사가 직접 하지 않으면 신체나 공중위생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이다. 면허정지 사유가 타당하다.”

기자가 방문했던 A도립의료원은 공익요원들의 중환자실 의료행위 문제를 따져 묻자 강하게 부인했다. 병원에 속한 공익근무요원들의 주요 역할은 행정업무며, 때에 따라서 의료진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 업무’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공익요원이 증언한 중환자실 사고(?)에 대해서도 병원 관계자는 “문제가 될 만큼 큰 일이 아니었고, 환자도 안전했다”면서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간병을 돕는 행위는 ‘의료행위’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 복무 중인 공익요원들의 설명은 사뭇 달랐다. 실제 중환자실에서 환자에게 석션을 했다는 공익요원은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일반인에게 호스를 맡기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정말 큰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의료진 옷을 입고 있다 보면 환자들은 저희가 군인인지도 모르거든요. ‘무책임’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승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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