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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전기요금 길게 많이 올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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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경제학

전기요금이 곧 인상될 모양이다. 인상 수준은 한전이 지난달 지식경제부에 제출한 평균 13.1%의 인상안을 토대로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전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대체로 6% 내외 인상이지 싶다. 지난해에도 8월과 12월에 각각 4.9%, 4.5%씩 인상되었으니 결국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15% 이상 급등하는 셈이다. 전기 소비자인 기업과 가계는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인상된 전기요금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니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전기요금 인상은 이미 예견됐다. 한전의 원가 보상률은 87.4%밖에 되지 않는다. 100원어치 판매할 때마다 13원씩 손해가 난다는 말이다. 한전이 지난해 3조3000억원에 이르는 영업 손실을 내고, 82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지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한전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구매하는 전력가격은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되므로 발전비용이 반영되어 있다. 반면 한전이 판매하는 전기요금은 물가안정, 산업경쟁력 보호 등의 이유로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경제논리는 후순위다. 특히 공공요금은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수단에 불과했다. 요금 인상을 좋아할 유권자가 없을 테니 원가를 반영한 공공요금 인상에는 언제나 소극적이었던 이유다.

 우리나라 전력가격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싸다. 다른 나라와 산업용 전력가격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2009년 기준) 석유환산톤(TOE)당 우리나라는 672달러다. 하지만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일본은 1835달러고, 유럽에서 발전단가가 가장 싸다는 프랑스도 1241달러나 된다. 전력을 가장 흔하게 사용한다는 미국조차 796달러다. 가정용 등 다른 용도의 전력가격도 사정은 비슷하다.

 왜곡된 전력가격은 희소성 신호의 오류를 초래한다. 물건이 흔해지면 가격은 저가 신호를, 귀해지면 고가 신호를 내보낸다. 그럼으로써 소비자로 하여금 흔한 것은 넉넉하게, 귀한 것은 아껴 쓰게 유도한다. 자원 배분의 효율성은 이렇게 달성된다. 소비자들은 어떤 재화가 흔한지 귀한지에 관심도 없고 알 수도 없다. 그저 가격 신호를 보며 소비량을 결정할 뿐이다. 그러니 턱없이 값싼 전력가격 신호는 전력 낭비를 조장한다. 지난해 9·15 정전사태와 같은 사건이 초래된 건 이런 점에서 당연한 결과다.

 전력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 그것도 장기적으로 꽤 많이 올려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전력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피해는 단기와 장기에서 달라진다. 단기적으로는 기존 사용기기의 이용률만 조정할 수 있을 뿐이라 갑작스러운 가격 인상은 곧바로 가계 부담과 생활 불편 증가로 이어진다. 소비자 피해가 커진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사용기기 자체도 전환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들에게 가격 인상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맞다. 오랜 세월 값싼 전력에 익숙해 부족한지를 모르고 살던 소비자들에게 갑자기 비싼 돈을 내고 아껴 쓰라고 강요하면 화부터 치밀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전력가격 인상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인상안을 내놓고 가격을 올려달라고 조르는, 예측 불가능한 방식에서 벗어나자. 대신 향후 전기가격은 꾸준히 인상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사전에 조성해 놓고 계획된 일정에 맞춰 인상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번부터라도 달랑 인상안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향후 전력가격 현실화 로드맵도 함께 제시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