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에서 20세기 최고의 영웅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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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영국의 유명한 경제 잡지 중에 '이코노미스트'라는 잡지가 있어. 이 잡지에서 지난 해 말에 '인터넷 세대들이 뽑은 20세기 최고의 영웅'을 발표했단다. 그 중에 컴퓨터의 운영체제를 만들어낸 빌 게이츠가 들어가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지. 또 현대 과학에서 아주 중요한 연구 성과를 낸 아인시타인이 포함된 것도 그리 뜻밖의 일은 아니야.

그런데 그들과 함께 인터넷 세대가 뽑아낸 영웅 중에 마하트마 간디가 들어 있는 것이 조금은 놀라웠단다. 내가 놀란 것은 인터넷 세대들이 간디를 그냥 '훌륭한 인물' 리스트에 올려 놓는 데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최고의 영웅으로 뽑을 만큼 그의 삶과 사상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야.

물론 너 역시 여태 마하트마 간디를 모를 리야 없을 거야. 그러나 혹시 이름과 그의 대표적 활동의 윤곽 정도만 아는 것일 수도 있는데 어떻니? 어쩌면 유명한 위인일수록 그에 대해 속속들이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아. 우리 어른들 가운데에서도 간디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어떠한 형태의 폭력도 거부한 '비폭력주의'를 바탕으로 인도의 독립운동을 30여년 동안 지도해왔던 운동가라는 정도야 다 알고 있지. 하지만 그토록 용기가 필요한 일을 해낸 그가 지독한 겁장이 어린이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아. 귀신과 뱀, 도둑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고 이야기하던 그 어린 아이는 나중에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이나 부족한 점을 그대로 드러낸 그야말로 자서전다운 '자서전'(마하트마 간디 지음, 함석헌 옮김, 한길사 펴냄)을 써내지.

아이야. 우리에게 알려진 자서전은 대개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난 날을 조금씩 과장해서 현재의 자기를 더욱 크고 훌륭하게 치장하기 위해 쓰는 책으로 돼 있지. 그래서 '자서전'은 무진장 재미없는 글의 종류 아닌가 싶어. 하지만 간디의 자서전은 그런 천박스런 자서전과 질적으로 달라. 아직은 네가 읽어보기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책이지만, 좀더 크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세상 모든 사람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아이야, 너만 해도 그렇잖니. 조금만 창피한 일이 있어도 그건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말자고 하잖니? 그건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생각일 거야. 겸손하게 자신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는 것만큼 큰 용기는 없을 거야. 그러고 보면 간디야말로 '참 용기'를 가진 위인이 아닌가 싶구나.

그 분의 삶을 너희들이 읽기 좋게 다시 써낸 책이 나왔어. 바로 '위대한 영혼, 간디'(이옥순 지음, 김천일 그림, 창작과비평사 펴냄)야. 이 책을 쓰신 이옥순 선생님은 동화 작가가 아니야. 그 선생님은 간디의 나라인 인도에서 인도의 역사를 공부하신 분이지. 그 공부를 바탕으로 이옥순 선생님은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푸른숲 펴냄)와 같은 인도에 대한 책을 우리 어른들이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쓴 책을 여러 권 펴내신 인도학자란다.

동화작가는 아니라 해도 간디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아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이 책은 동화만큼 재미있고, 유익하게 쓰여졌어. 간디가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트마 간디'라는 이름을 얻기 전인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는 시작돼.

이 책도 간디의 자서전처럼 어릴 때부터 그가 남달리 똑똑하고 훌륭했다는 식은 아니야. 혹시 그렇게 간디를 소개한 책이 있다면 그건 간디를 잘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이겠지. 간디는 결코 자신을 과장하는 법이 없었거든.

이 책에는 간디의 어린 시절, 담배 맛이 궁금해 어른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서 피웠던 일, 담배 살 돈이 궁해지자 하인의 지갑을 훔쳐냈던 일 등 평범한 사람이라면 굳이 되돌이켜 생각하기 싫어할 법한 일들을 드러내고 있어. 심지어 형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집에서 금붙이를 훔쳐낸 일까지 그대로 보여주지.

짧지만 간디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옥순 선생님은 애를 쓰고 있어. 영국에서의 변호사 활동, 남아프리카에서의 공동체 활동 등 그의 활동 모두를 조금씩이지만 핵심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 그의 이같은 활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어주는 바탕은 바로 '비폭력-시민불복종'이라고 이야기되는 인도 독립운동의 사상이야.

우리나라도 일본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였던 경험이 있지. 물론 우리의 식민지 역사에서도 적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볼 수 있어. 여기에서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인도의 간디와 비교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그저 간디라는 인도의 한 위대한 인물이 왜 20세기의 최고 인물로 꼽혀야 했던가를 한번 정도는 곱씹어 보는 게 좋을 듯하다는 거지.

아이야. 날씨가 매우 춥구나. 방학이라고 가만히 집에 앉아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네가 존경할 수 있는 위인들의 삶을 꼼꼼히 읽어보고, 그분들의 삶에 조금씩이나마 가까이 다가서려고 노력해 보는 것은 어떻겠니.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 이 글에서 함께 이야기한 책들

'위대한 영혼, 간디'(이옥순 지음, 김천일 그림, 창작과비평사 펴냄)

'간디 자서전'(마하트마 간디 지음, 함석헌 옮김, 한길사 펴냄)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이옥순 지음, 푸른숲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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