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중학생 받아쓰기 10점 만점에 2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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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신준봉
문화부문 기자

22일 낮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 지난달 국립국어원장에 취임한 민현식(58) 서울대 교수(국어교육학)가 기자들과 첫 대면을 했다. 앞으로 2년간 국어원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 포부를 밝히는 자리였다.

 민 원장은 대뜸 A4 용지 크기의 두툼한 종이 묶음을 꺼냈다.

그의 전문 분야는 맞춤법 교육. 어린 학생들의 국어 사용 실태를 나름대로 모니터링해 왔고, 종이 뭉치는 3년 전인 2009년 말 서울 관악구의 한 중학교 1학년 학생 1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맞춤법 시험지라고 소개했다.

 시험은 모두 10문제. 한 학생은 ‘강아지가 뼈다귀를 핥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에서 ‘핥’을 ‘햟’로 써 틀렸다. 이 학생의 점수는 3점. 또 다른 학생은 ‘돈을 갚지 않으면’이라는 구절에서 ‘갚’을 ‘값’으로 써 역시 틀렸다. 이 학생의 점수는 2점. 100여 명 학생들의 시험지는 대충 봐도 대개 2∼3점대였다. 가끔 5∼6점짜리가 나왔다.

 민 원장의 ‘폭로’는 계속됐다. 국어원은 한글 맞춤법을 알려주는 ‘가나다 상담전화’를 오래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국어와 친구되자(9979)’는 뜻에서 전화번호도 ‘1599-9979’로 개설한 이 전화로 가장 자주 걸려오는 질문 중 하나는 ‘없음’의 표기라고 한다. 성인들조차 ‘음’인지 ‘슴’인지 헷갈려 한다는 거다.

 민 원장은 “현재 한국어 교육이 위기 상황”이라고 했다. K-POP이 불러 일으킨 한류바람에 힘입어 외국에서는 한 해 수십 만 명씩 한국어 검정 시험을 치르느라 야단법석인데, 정작 한국에서는 정상적인 의사소통마저 지장을 받을 정도로 한국어 교육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성인들 사이에 ‘만홀’ 현상이 심각하다”고 했다. 한글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끝내는 것이려니, 만만하게 여기고 소홀히 한 결과 한국인의 모국어 구사 능력은 선진국 모임인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국어원은 합리적인 국어 정책 추진에 필요한 각종 조사와 연구작업 수행을 위해 1991년에 만들어졌다.

올해 국어원은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 방식으로 운영되는 개방형 한국어 사전, 국민의 국어 능력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당장 약효가 나타나지 않겠지만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에 필요한 기초 체력을 다지자는 뜻에서다.

 이런 제도 개선도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민 원장의 얘기는 결국 한국어, 한글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영어를 못했다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맞춤법 틀리는 것은 대수롭지 여기는 ‘상식 밖 상식’이 고쳐져야 한다는 거다. 민 원장의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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