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싸게 해놓고 분양받지 말라니...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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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은기자]

“청약 일정만 알았더라도 시세보다 1000~2000만원 싸게 아파트를 장만할수 있었는데, 기가 찰 노릇이네요”.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최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이 새 아파트를 배정받기를포기하고 현금청산을 받으면서 남은 물량에 대해 업체 측이 청약가입자를 대상으로 일반분양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일반분양가가 조합원이 배정받아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등에 내놓은시세보다 싸지게 되자업체와재건축조합이 일반분양 청약 일정을 의도적으로 '쉬쉬'했다는.

조합원들의 요구 때문이라는데. 그 이유는 뭘까.

이달 초 대구 서구 평리동에서 조합원들이 배정받기를 포기한‘평리 푸르지오’ 아파트 70가구를일반 분양하기로한 대우건설은 일반분양분입주자 모집공고를 서울에 근거지를 둔 한 석간신문에 실었다.

물론 대구에서도 이 신문을 보는 독자들이 있다. 하지만 주요 일간지나 주요 지방 일간지에 비해 구독률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보통 주택업체는 아파트를 분양할 때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기 위해 광고비가 비싼 매체에 광고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순위내에서 빨리 분양할 수 있다.

2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새로 분양할 때는 주택업체는 일간지에 입주자모집공고를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어느 매체에  할지는 업체 자유다.

그런데 이번처럼 사람들이 '덜 보게' 독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매체에광고하는 것은청약 통장 가입자들의 분양 계약을 최소화해 의도적으로 미분양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대구 서구 중리동의 A공인 관계자는 “대구에서는지역지나 중앙일보, 조선일보등 등 중앙 조간 일간지를 주로 구독한다”며 “중앙에서 발행하는 석간신문을 보는 곳은 드물기 때문에 그런 신문에 입주자 모집공고를 냈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청약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가 싸자 조합원들 반발

결국 건설사와 조합 측의 의도대로 이 아파트의 순위 내 청약 결과는 뻔했다. 1~3순위에서 청약에 나선 청약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이 미분양을 유도했던 이유는조합원이 배정받아 중개업소에 내놓은 아파트 시세보다 이번에 재분양한 아파트의 분양가가 500~2000만원 가량 저렴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아파트 단지 인근 중개업소에나와 있는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형시세(매물은 아파트를 배정받은 조합원이 내놓은 것들이 많다) 22000~24000만원인데 반해, 이번에 재분양 형태로 나온 아파트 분양가는 21000~22000만원.

전용 113㎡형매물 호가는 26000~28000만원이지만, 재분양되는 아파트 분양가는 25500~26500만원이다. 이번에 일반분양을 받으면 시중가보다 500~1500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이번에 재분양하는 물량에 청약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이 경우 매물로 나온 아파트 시세가 자연스럽게 떨어지기 때문에 일부 조합원 등이 업체측에 깜깜이 분양을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소문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도“조합원이 이미 배정받은중소형 아파트에는 1000~2000만원 가량의 웃돈이 붙어있는데, 기존 시세보다 저렴한 물건이 시중에 나오면 가격이 하락할 것을 우려한 조합의 요청으로 깜깜이 분양을 선택하게 됐다”고 실토했다

이 아파트의 경우순위 내 청약을 마친 이후에 진행되는 후순위 청약 일정도 일반인들은 제대로 몰랐다.보통 아파트 분양 때 당첨자 발표가 끝나면 바로 후순위 청약을 받게 되는데, 청약 사실을 아예 모르다 보니 이런 일정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지난주에 있었던 후순위 청약에는 청약 사실을 알고 있는 이 지역 부동산 업자 등  30여명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시세보다 저렴한 아파트를 분양 받아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

평리동 B공인 관계자는 “실수요자 입장에선 보다 저렴한 가격에 새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지만, 조합원들은 집값 하락을 막을 수 있고 건설사는 홍보비용을 아낄 수 있고, 부동산중개업자는 돈을 벌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귀띔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깜깜이 분양은 통상적으로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아파트를 판매하기 어렵거나, 입지 등이 좋아 굳이 홍보를 할 필요가 없을 때 사용되는 방법”이라며 “하지만 이런 경우 실수요자들이 보다 저렴하게 내 집마련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5월 완공됐으며, 같은 해 11월 입주를 시작했다. 1819가구의 대규모단지로 일반분양분 960여 가구가 지난해 5월 첫 분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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