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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밀린 日업체 샤프 "앉아서 죽느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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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3월 26일 일본 오사카(大阪)의 샤프 본사 2층 응접실.

 “앉아서 죽느니 차라리….”

 마치다 가쓰히코(町田勝彦·68·사진) 당시 회장(현 상담역)은 갈등을 접고 마음을 굳혔다. 그러곤 벌떡 일어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대만 훙하이(鴻海)그룹 창업자 궈타이밍(郭台銘·일명 테리 고·61) 회장의 손을 굳게 잡았다. 일본 유력 전자업체 샤프 본사의 지분 9.9%를 훙하이에 파는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샤프의 최대주주는 훙하이가 됐다. 연매출 10조 엔(약 145조원)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EMS(전자제품 생산전문)기업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샤프 액정패널 생산거점인 사카이(堺) 공장의 운영 자회사 SDP(샤프 디스플레이 프로덕트)의 지분 46.5%도 궈 회장 개인에게 넘겼다. 사카이 공장은 샤프의 심장과 같은 존재다. 샤프는 사실상 훙하이의 휘하에 들어가게 됐다.

 다음 날 일본 언론들은 난리가 났다. 신문마다 대서특필했다. ‘미녀의 유혹에 넘어간 샤프’란 제목의 기사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자본에 회사를 넘긴 일본의 주요 전자업체는 샤프가 최초였다. 더구나 올해는 창사 100주년.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21일 마치다 회장이 훙하이에 회사를 넘기게 된 뒷이야기를 자세히 보도했다. 마치다 회장을 지분 매각으로 내몬 것은 참담할 정도의 실적이었다.

 샤프는 2012년 3월 결산(2011년 4월~2012년 3월)에서 3760억 엔(약 5조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경쟁업체 파나소닉은 7721억 엔(약 11조3500억원), 소니는 4566억 엔(약 6조7000억원)의 적자다. 3사의 적자폭은 모두 사상 최대 규모다.

 사실 마치다 회장은 샤프의 ‘영웅’과 같은 존재였다. 1998년 사장으로 취임한 마치다는 브라운관 TV시장에서 앞섰던 소니·파나소닉을 제치고 일본 액정TV 시장점유율 1위로 만들었다. 일본 시장에서 자신감을 얻은 샤프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올인’을 했던 게 몰락의 원인이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파워 게임’으로 승부를 걸려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다.

 해외 시장에서 삼성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말았다. 공장과 창고에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재고는 3.4개월분. 적정 재고가 1개월분인 걸 감안하면 위험수위였다. 4300억 엔을 투입해 만든 사카이 공장의 가동률은 50%로 뚝 떨어졌다. 올 들어 증자를 검토했지만 금융기관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엔고(円高) 여파로 수출도 곤두박질쳤다.

 당시 업계에선 “소니-파나소닉-샤프가 TV사업을 3자 통합할 것”이란 예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샤프는 이를 거부했다. 일본 업체가 같은 위기에 처해 있는 마당에 약자끼리 손잡아봐야 효과가 없다고 봤다. 대신 애플사의 큰 고객이며 자금력이 강한 훙하이와 손잡는 쪽을 택한 것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이날 마치다 회장의 마지막 고뇌와 선택의 배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전 세계 액정 TV 판매대수는 샤프가 1230만 대, 삼성은 4300만 대. 마치다 회장은 ‘다소 (샤프에) 기술적 우위가 있다 해도 (삼성의) 압도적인 규모 앞에선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현 상황이 결코 일과성이 아니라고 봤다. ‘이건 일본 디지털 가전의 한계다. 5년 앞, 10년 앞을 생각한다면 지금 방식대로 아무리 분발해도 결국은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샤프=1912년 하야카와 도쿠지(早川德次)가 일본 도쿄에 설립한 금속업체로 시작했다. 언제나 날카로운 연필이란 뜻의 에버샤프(Eversharp Pencil)에서 이름을 따왔다. 25년 일본의 1세대 라디오를 처음 출시했고, 64년엔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 계산기를 개발했다. 70년대부터는 LCD 기술을 집중 개발해 일본 내 액정TV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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