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다, 무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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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타격감이 좋은 타자들은 “배트 하나 달라”는 요청에 시달린다. 21일 현재 13홈런으로 이 부문 1위인 강정호(25·넥센)는 곳곳에서 쏟아지는 부탁에 난감해 할 정도다. 그러나 타율 0.451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타격 선두를 질주 중인 김태균(30·한화)은 다르다. 김태균의 배트를 잡아 본 타자들은 이내 포기하고 만다. 김태균의 배트는 그의 손안에서만 마법을 부린다. 다른 타자들도 자신만의 요령으로 배트를 무기로 만든다. 변화무쌍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드는 공에 타자가 맞설 무기는 배트 하나뿐이다. 그래서 타자들은 배트를 손질하며 ‘과학적인’ 주문을 건다.

※ 국내 평균 배트 무게는 870g<사진크게보기>

 ◆김태균 배트, 줘도 못 쓴다=김태균은 시즌 초 1㎏짜리 배트를 썼다. 최근에는 940g으로 낮췄다. 그래도 국내 타자 중 가장 무거운 배트를 쓴다. 힘이 동반되지 않으면 배트를 마음대로 휘두르기 어렵다. 김태균은 “시즌 중에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고 밝혔다. 힘을 타고난 그도 배트 컨트롤을 위해 끊임없이 몸을 단련한다. 다른 타자들이 김태균의 배트를 탐내면서도 결국 포기하는 이유는 ‘무게’에 있다.

 상대적으로 무게에 대한 부담이 작은 김태균은 ‘배트 내 힘의 분산’에 더 신경을 쓴다. 일반적인 배트는 손잡이에서 배트 헤드까지 점점 굵어진다. 김태균의 배트는 손잡이를 기준으로 20㎝ 정도 앞에서 갑자기 굵어진다. 김태균의 타격 자세를 고려해 제작한 배트다. 김태균은 “최근에는 타자들이 앞다리 쪽에서 공을 치더라. 나는 최대한 공을 끌어들여 뒤쪽에서 친다. 배트의 헤드만 무거우면 스윙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 배트의 무게가 앞쪽으로, 조금 분산돼야 스윙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김태균은 등번호가 투수에게 정면으로 보일 정도로 허리를 포수 쪽으로 돌려 타격을 준비한다. 뒷다리에 체중을 싣고, 최대한 오래 공을 본 뒤 타격한다. 배트가 무거워야 공을 멀리 보낼 수 있지만 그 무게가 배트 끝에 집중되어 있으면 공의 속도를 이겨내지 못한다. 김태균은 고민 끝에 최적화된 배트 모양을 찾았고, ‘4할 타자’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한대화(52) 한화 감독은 “나도 현역 때 배트 공장을 찾아 내게 적합한 배트를 주문하곤 했다. 타자마다 자신에게 맞는 배트가 있다. 태균이는 똑똑한 것”이라고 칭찬했다.

 ◆‘무기’를 만드는 방법들=사실 모든 타자들이 배트에 대해 고민한다. 대표적인 고민은 ‘무게’다. 올 시즌부터 LG 4번타자로 활약하고 있는 정성훈(32)은 국내 프로야구 타자 평균인 870g짜리 배트를 900g으로 바꿨다. 그는 “장타율을 높이기 위한 의도였다”고 밝혔다. 강정호는 2006년 860g짜리 배트를 쓰다 2009년에는 870g으로, 2011년에는 880g으로 무게를 늘렸다. 무게에 익숙해진 올해 홈런을 쏟아내고 있다.

 960g짜리 배트로 2003년 56개의 홈런을 쳤던 이승엽(36·삼성)은 배트 스피드를 고려해 올해는 900g짜리 배트를 주로 쓴다. 일반적으로 타자들은 체력이 떨어진 여름철에는 10~20g 정도 배트 무게를 낮춘다. 힘과 속도의 교차점을 찾으려는 의도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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