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못 없인 컴퓨터 없어 … 단순 기술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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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파우더리 교수는 지난 17일 서울 금호동 자신의 작업실 ‘나사 팩토리(나사 공장)’에서 “최첨단 기술보다 나사못 하나가 인간에게 더 필요한 기술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나사못이 없다면 컴퓨터도 존재할 수 없다는 예를 들었다. [안성식 기자]

24일 부산시 부전동 롯데호텔 아트홀에서 열리는 지식 공유 강연 ‘테크플러스포럼’엔 눈길을 끄는 연사가 여럿이다. 그중에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제임스 파우더리(James Powderly·37) 교수와 삼성창의개발연구소 연구원들이 눈에 띈다. 지난해 테크플러스포럼에서 연사와 청중으로 만났던 이들은 올해 연사로 나란히 무대 위에 오른다.

 지난해 파우더리 교수는 서울 회기동 경희대에서 열린 테크플러스포럼에서 ‘기술, 감동을 덧입다’란 주제로 무대를 꾸몄다. 그 자리에서 자신과 제자들이 벌였던 한국판 아이라이터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눈동자의 움직임을 인식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아이라이터는 루게릭병에 걸려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미술가 친구를 위해 미국인들이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파우더리 교수는 이 프로젝트를 한국에서 진행했다. 이날 강연장에 와 있던 삼성창의개발연구소 연구원들 역시 미국의 아이라이터에 영감을 받아 보급형 안구 인식 마우스를 개발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들은 파우더리 교수의 강연 직후 자신들의 안구 인식 마우스 개발 결과물을 들고 파우더리 교수를 찾아가 서로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확인했다.

 17일 만난 파우더리 교수는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고 사용되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며 “테크플러스포럼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 교류하게 됐고 이를 통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는 접점을 늘려 가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과 예술가 중심으로 진행된 자신의 프로젝트는 결과물이나 영향력이 크지 못했지만 테크플러스포럼을 통해 삼성의 엔지니어를 만나면서 사장되지 않고 오히려 날개를 달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외의 만남이 창의력을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파우더리 교수는 원래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엔지니어였다. 대학에선 음악을 전공했다. 한데 연습 때마다 여러 악기 연주자를 한자리에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입문했다. 그 인연으로 NASA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예술에 대한 열정을 확인했고, 컴퓨터와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 존재하는 미디어아트를 공부하게 된 것이다.

 그는 최첨단 기술보다 단순한 기술에 주목한다. 최첨단 기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이 기반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례로 전 세계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할 때 필요한 컴퓨터 내 나사못의 숫자는 120억 개나 된다. 나사못이 없다면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NASA에서 일할 때 들었던 우스갯소리를 꺼냈다.

 “미국에선 무중력 상태에서도 쓸 수 있는 잉크펜을 만들기 위해 천문학적 돈을 쓰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그냥 연필을 쓴대요. 어쩌면 단순한 로테크가 사람들에겐 더 필요할 수도 있어요.”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기술이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대표적인 게 발광다이오드(LED) 아트다. LED 램프와 프로젝터 등을 통해 건물 벽을 빛으로 장식하는 것이다. 벽에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기 위해 시도됐다. 파우더리 교수는 2008년 서울 곳곳에서 LED 아트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도심에 빛으로 그린 그림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테크플러스 포럼

서로 다른 분야 간의 지식 융합을 통해 영역별 경계를 넘고 세상을 바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열리는 포럼. 지식경제부·한국산업기술진흥원·중앙일보가 2009년부터 주최해 왔다. 그동안 계속 서울에서만 열어 오다 올해 처음으로 무대를 지방으로 옮겼다. 올해 행사는 24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창조적 아이디어가 만드는 산업의 진화’를 주제로 열린다. 산학연 전문가 4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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