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8억 금융 자산가, 5억 빼서 즉시연금·물가연동채로 갈아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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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미래에셋증권 도곡지점 자산관리 세미나에서 이 회사 이용규 상품기획팀장이 VIP 고객을 대상으로 분리과세 상품 등 각종 절세 금융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미래에셋증권]

대형 증권사 VIP센터에 근무하는 조모(38) PB는 지난 3월 15일의 기억이 생생하다. 올해 최고로 바빴던 날이다. 출근해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가 빗발쳤다. 점심 무렵 한숨을 돌리나 했더니, 이번엔 지점으로 찾아오는 고객이 줄을 이었다. 전날 새누리당이 내놓은 총선 공약 때문이었다. 새누리당은 금융소득과 주식양도차익 등에 대해 과세를 강화하고 비과세 감면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5년간 89조원의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을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낮추고, 이후 단계적으로 더 낮추자는 데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그대로 시행되면 이제껏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아니었던 자산가 상당수가 금융소득을 다른 소득과 합산해 고율의 종합소득세를 내야 한다. 은행에 8억원 예금하면(금리 연 4% 기준) 금융소득이 3000만원을 넘는다. 조 PB는 “자산가들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B증권사 소속 세무사는 “이제까지 (금융소득이) 4000만원을 넘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는데 무슨 수로 3000만원 밑으로 맞추느냐며 걱정하는 자산가가 많다”고 전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0년 소득 기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낸 사람은 4만8907명이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금융권에서는 종합과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금융자산 10억원 초과 인원을 13만 명으로 본다. 금융소득이 4000만원을 넘지 않도록 ‘관리’해 종합과세를 피하고 있는 사람이 단순계산으로 8만 명이라는 뜻이다. 기준이 강화되면 이들 중 상당수가 종합과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절세에 대한 자산가들의 관심이 부쩍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융사도 발 빠르게 세금 문제를 금융상품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 대형 증권사는 올 들어 4월까지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30번의 세무설명회를 했다. 지난해 1년간 연 횟수(22번)보다 더 많다. 횟수뿐 아니라 내용도 달라졌다. 올 초 주가가 상승함에 따라 최근 ELS(주가연계증권) 투자로 높은 수익을 얻은 이들이 늘어난 것도 금융소득종합과세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이런 설명회에서는 아예 세금을 내지 않거나, 분리과세를 신청할 수 있는 상품 등이 주로 해법으로 제시된다. 때마침 자산가들이 저금리로 인해 은행 예금에 등을 돌렸고, 주가 하락으로 다른 투자 대안이 없는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강남구 도곡동에 거주하는 A씨(50)가 대표적이다. 금융상품에 모두 8억원을 굴리는 그는 최근 은행 정기예금 5억원 중 3억원을 빼 보험사 즉시연금에 넣었다. 또 얼마 전 간신히 원금을 회복한 해외펀드 1억원을 환매해 물가연동국채를 사고, 저축은행에 넣었던 돈도 만기가 돌아오자 월 지급식 ELS 등에 투자했다. 이렇게 하면 금융소득은 오히려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즉시연금은 10년 이상을 유지하면 세금을 내지 않고, 물가연동채는 표면 금리가 낮기 때문에 과세 대상이 되는 액수는 되레 준다. 이렇게 해서 그는 155만원의 세금을 덜 내고 더 많은 수익을 올려 연간 약 900만원의 수익을 더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증권 김예나 세무사는 “자산가들의 이런 분위기는 총선 직전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여당 승리 후 한풀 꺾였지만 경계감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여야 할 것 없이 복지를 늘리고 부자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는 추세여서다. 박국재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 PB는 “몇 차례 주가가 급락하는 등의 변화에도 이들은 세금을 중점적으로 고려해 짠 포트폴리오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시연금보험 목돈을 한 번에 맡긴 뒤 다음 달 또는 원하는 시기부터 연금을 다달이 수령하는 상품이다. 노후에도 일정한 수입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설계됐다. 종신형 상품에 가입하면 사망할 때까지 매달 일정한 보험금을 탈 수 있지만 한번 가입하면 해약이 불가능하다.

물가연동채권 채권의 원금과 이자 지급액을 물가에 연동시킨 상품. 특정 물가 지수에 따라 채권 가격이 오르내리게 된다. 채권 투자에 따른 물가 변동 위험을 제거해 실질 구매력을 보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10년 만기 물가채의 금리가 연 1.7%, 국고채의 금리가 연 4.0%라고 할 때 연간 물가 상승률이 2.3% 이상이라면 물가채에 투자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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