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듬치’ 극복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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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호 31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의 다른 재능들에 비해 유독 리듬감이 별로라고 느꼈다. 수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의 음악에서 특히 리듬감이 돋보인다고 평하는 분들이 들으면 놀랄 내용이다. 가장 자신 없던 항목이 비장의 무기가 되기까지는 나의 재미있는 노력들이 있었다.

내가 박자 감각이 모자랐다는 말은 아니다. 리듬과 박자라는 두 개념은 자주 혼동되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리듬의 뜻을 백과사전에서 찾으면 ‘음악용어로 율동 또는 절주(節奏)’라고 나오는데 ‘흐른다’는 뜻의 동사 ‘rhein’이 어원인 그리스어 ‘rhythmos’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서양 음악의 3요소라고 하는 멜로디(선율), 화성, 리듬 중 화성이야 으레 인간이 만들어낸 법칙이라 치고 멜로디와 리듬 중에서는 무엇이 먼저일까? 원시 시대를 떠올리면 간단하다. 심지어 목으로 음의 높낮이를 조절해 일정 주파수의 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도 몰랐던 그 시대에도 리듬은 존재했다.

심장 박동, 걸음걸이부터 물 흐르는 소리, 동물 울음 소리…. 멜로디나 화성이 전혀 없는 단순 소음에도 리듬은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존재하는 소리에는 리듬이 있는 것이다. 당연히 맥박을 가진 인간이 제일 원초적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가진 가장 큰 힘 역시 절로 몸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엉덩이를 실룩거리게 만드는 것은 멜로디도 화성도 아닌 리듬이다. 내 리듬감이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부분에서였다. 나는 분명 박자는 잘 맞추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사람을 움직이게 할 만한 리듬은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스스로를 다각도로 관찰한 결과 찾아낸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내가 덜 쪼개고 덜 채운다는 것이었다. 매우 다르게 들리지만 둘은 상응하는 맥락인데, 이런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작은 공을 채워 넣어 만든 큰 공이 잘 굴러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속에 들어갈 작은 공의 크기는 최대한 작고, 수는 최대한 많아야 좋을 것이다. 이것들을 매우 촘촘히 채워 큰 공 속의 빈 틈을 최소한으로 줄였을 때 매끄럽게 굴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채워 넣는 공이 커서 빈 틈이 많이 생기면 장애물을 만날 때 쉽게 멈출 것이니 말이다. 또 하나, 이 작은 공들을 하나하나 정확히 최대치로 부풀려 완벽한 구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라도 설 부풀어 있다면 큰 공의 형태가 일그러져 굴러가다 말고 멈출 것이다.

리듬이 바로 이와 같다. ‘최소 단위를 쪼개어 가장 잘게 만든 다음 최대치로 채워 긴장감의 연속성을 만들면, 리듬이 흥을 띤다’. 생활 속에서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고 발을 구르며 체득한 이론이었다. 밥 먹을 때도 젓가락을 두들겨 가면서 리듬감,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고 두드릴 때도 리듬감을 생각했고 피아노 뚜껑을 닫고 음은 상상만 하면서 그 위를 두들기며 리듬감을 느끼는 데에만 집중하는 연습도 많이 했다. 음악을 들을 때는 무조건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고 가끔씩 스텝을 밟아보거나 손으로 스윙을 만들어보는 습관을 들였다.

그러나 사실 두 번째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것은 바로 나의 내성적 성향이었다. 엉뚱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리듬감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한마디로 어디서든 음악에 맞춰 남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어댈 수 있는 성격이 바람직한데, 이거야말로 내가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이른바 약점이어서 극복할 방법이라곤 오직 꾸준한 시도뿐이었다. 길거리에서라도 음악이 나오면 그에 맞춰 몸을 흔들어 보기, 옆에 누가 있든 콧노래를 흥얼거려 보기, 제일 중요한 건 그러면서 쭈뼛거리지 않기…. 이상적인 리듬감이 갖고 싶어 기울였던 노력들이라기보다는 자아 찾기 여행에 더욱 근접했다. 실은 음악이야말로 자아 여행의 보고니 결과적으로 나의 부족했던 리듬감이 내 음악에 영감이 된 셈이다.

또한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 쉽게 논리를 설명하기 힘든 다른 재능들에 비하면 누구에게라도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로 꼭꼭 씹어 삼킨 능력이라는 자신감이 내 리듬감에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흐뭇한 점은 리듬을 즐길 수 있게 된 나 스스로다. 몸으로, 마음으로 리듬을 ‘탈’ 수 있게 된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


손열음 1986년 원주 출생. 뉴욕필과 협연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이다. 올해 열린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2위를 했다. 음악듣기와 역사책 읽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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