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다저스 역사 (4) - 창과 방패의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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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신시내티 레즈와 LA 다저스의 격전장이었다.

1970년부터 1979년까지의 10시즌동안 둘이서 지구우승을 나눠가진 것만 9회.(신시내티 6회, 다저스 3회) 게다가 그중 일곱번은 한 팀이 1위면 다른 한 팀은 2위였다.

둘은 팽팽한 대결만큼 성격도 달랐다. '빅 레드 머신'으로 대표됐던 신시내티가 자니 벤치, 토니 페레즈, 조 모건, 피트 로즈, 조지 포스터, 켄 그리피 시니어의 기관총 타선을 내세웠다면, 다저스는 돈 서튼, 클로드 오스틴, 앤디 메서스미스, 버트 후튼, 토미 존, 마이크 마셜의 마운드에 승부를 걸었다.

물론 70년대 내셔널리그의 최강자는 신시내티였지만, 그들을 가장 괴롭힌 상대가 다저스였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당시 다저스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바로 최고의 내야진이었다. 스티브 가비(1루수)-데이비 룹스(2루수)-빌 러셀(유격수)-론 케이(3루수)로 구성됐던 다저스의 내야는 메이저리그 최강이자 최장(最長)의 내야진이었다. 1973년에 완성된 이 멤버는 무려 1981년까지 이어졌다.

신시내티에 번번히 무릎을 꿇었던 다저스의 복수는 1974년에서야 이뤄졌다. 서튼과 메서스미스가 39승을 합작했고, 지미 윈이 32홈런을 날린 그 해, 다저스는 102승을 차지하며 신시내티를 4경기차로 눌렀다. 마셜은 마무리투수로서는 경의적인 106경기에 출장, 208이닝을 던지며 구원투수 최초로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다저스는 리그 챔피언십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격파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게 5경기만에 무너졌다.

토미 라소다가 등장한 1977년과 이듬해인 1978년, 다저스는 2년연속 신시내티를 2위로 밀어내고 지구우승을 차지했다. 1978시즌이 끝나자 신시내티는 우승실패의 책임을 물어 스파키 앤더슨 감독을 해임했다. 앤더슨의 해임으로 시작된 '빅 레드 머신'의 해체는 결국 다저스가 저지른 일이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낼 수 있었던 두 번의 기회를 'Mr. October' 레지 잭슨이 이끈 뉴욕 양키스에 막혀 모두 놓치고 말았다.

1981년 다저스에는 '공포의 신인' 페르난도 발렌주엘라가 등장했다. 발렌주엘라는 에이스 제리 로이스 대신 등판한 개막전에서 2-0 완봉승을 거뒀고, 결국 그해 신인왕과 사이영상을 석권하며 '페르난도매니아'의 신드롬을 불러왔다.

파업으로 시즌이 단축되며 승률 상위 4개팀이 맞붙었던 리그 챔피언십에서 다저스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제압하고 월드시리즈에 나섰다. 상대는 상대전적 1승 8패의 치욕을 안겨준 뉴욕 양키스.

다저스는 로이스와 후튼이 나선 1, 2차전을 모두 패하며 역사를 되풀이하는 듯 했지만, '81년의 다저스'는 달랐다. 3, 4, 5차전의 홈경기를 모두 1점차로 잡아내며 전세를 역전한 다저스는 6차전에서 외야수 페드로 게레로의 방망이가 폭발하며 사상 5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5편에서 계속)

◇ 다저스 역사 (1) - 개척자 다저스
◇ 다저스 역사 (2) - 브루클린의 황금시대
◇ 다저스 역사 (3) - 투수왕국의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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