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난파선 의문의 막대기, 수량 표시하는 각기목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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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난파선 마도 2호선에서 발견된 각기목. 수량을 표시하는 가로줄이 그어져 있다. 윗부분의 홈에는 끈을 묶어 짐에 매달았다.

2009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인양된 고려시대 난파선 ‘마도 1호’의 유물 중에는 주걱처럼 생긴 나무 막대기가 하나 포함돼 있었다. 가로줄(ㅡ)이나 사선(/), 엑스(X)자가 어지럽게 새겨진 막대기였다. 다음 해 같은 장소에서 인양된 ‘마도 2호’에서도 비슷한 막대기가 네 개 나왔다. 그러나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밝혀지지 않아 보고서에는 그냥 ‘목제 유물’로 기록됐다.

 고려시대 물건의 수량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던 ‘각기목(刻記木)’의 존재가 처음으로 일반 공개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임경희 학예연구사는 19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학술문화운동단체 ‘문문(文文)’ 창립기념 학술대회에서 마도 1·2호선에서 출토된 이 나무 막대기들이 그 동안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각기목’이었음을 밝힌다.

 ‘각기’란 물건을 출납할 때 그 내용과 수량를 나무에 새기는 행위를 말한다.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시대에는 수를 계산하는 주판(籌板)이 존재하지 않았다. 관리가 돈이나 비단을 출납할 때 계리(計吏)는 수량을 나무조각에 칼로 파서 새긴다. 물건 하나를 기록할 때마다 한 자국을 긋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번에 발견된 각기목에는 가로줄(ㅡ)이나 사선(/), 엑스(X)자가 새겨져 있는데 가로줄 하나가 한 개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선이나 엑스자가 의미하는 수량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둘 다 가로줄보다는 큰 숫자이며 엑스자는 10을 뜻할 가능성이 크다.

 고려시대의 유물 중에는 수량를 한자로 적어 놓은 나무판인 목간(木簡)도 존재한다. 목간과는 달리 각기목의 중간에는 잘록하게 홈이 파여져 있다. 이 홈에 끈을 묶어 짐에 매달아 짐 안에 있는 수량을 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임경희 학예사는 “기다랗고 홈이 있는 각기목에 끈을 달아 짐에 부착하는 것이 신속한 적재와 운송에 더 유리했을 것”이라며 “한자를 읽지 못하는 뱃사람이나 운반하는 인부들이 쉽게 수량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자가 아닌 기호로 적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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