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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갈라파고스로 갈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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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선희
논설위원

최근 연거푸 “한국이 ‘IT산업의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경제용어로 갈라파고스는 자기 표준을 고집해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이른다. 물론 이는 IT업계에서 개인정보 이용 규제 등을 불평하며 간간이 하던 말이다. 그런데 이들의 우려는 그런 단순한 불평을 넘어 있었다. 그래서 들여다봤더니 실제로 올해 세계 IT산업에선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할 만한 인터넷 비즈니스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선두에 ‘빅 데이터’가 있다. 올 초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2012년 가장 중요한 기술’로 빅 데이터를 지목했고, 미국은 최근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주도로 2억 달러를 투자해 빅 데이터 주도권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빅 데이터가 뭐길래? 결론적으로, 생각하고 추론해서 내 고민에 대답을 해주는 환상적인 컴퓨팅 기술이다. 컴퓨터가 생각하는 기반은 인터넷 시대 이후 컴퓨터가 축적하게 된 모든 종류의 정보들이다. 코드화된 정보+동영상+통화 내용+기타 등등. 이런 정형화되지 않은 모든 정보들을 똑똑한 컴퓨터가 저 혼자 버무리고 반죽해 대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가장 앞선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구글·야후와 같은 검색업체들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막대한 정보는 빅 데이터의 인프라다.

 벌써 이를 활용하는 상품으로 말귀를 알아듣는 컴퓨터도 나왔다. 검색어를 쳐넣을 필요 없이 “나 심심한데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하고 물어보면 된다. 사람 말을 알아듣고 컴퓨터가 생각해 대답을 내놓는다. 지난해 미국TV가 말로 퀴즈를 내면 먼저 벨을 눌러 답하는 퀴즈대회를 인간 퀴즈의 달인과 IBM수퍼컴퓨터 ‘왓슨’의 대결로 벌인 일이 있다. 이 대결에서 말귀를 알아듣는 컴퓨터 왓슨이 74회 연속 우승의 인간 퀴즈 달인을 이겼다. 이미 왓슨 외에도 애플이 시리를 발표하는 등 미국 IT기업들은 구체적 상품을 내놓고 있다.

 또 오라클·IBM·HP등은 기업 내부의 축적된 정보와 SNS 정보 등을 분석해 상품 기획과 마케팅, 연구개발 계획에 활용할 수 있는 기업용 솔루션을 내놓았다. 하둡이라는 빅데이터 오픈소스 기술도 나왔고, 구글은 빅 데이터 솔루션을 클라우드 컴퓨팅과 결합하는 ‘빅 쿼리’라는 서비스를 개발해 사전 시험 단계에 들어가 있다. 이들이 서비스를 시작한다면 세상을 분석하고 재단할 더 많은 정보들이 이들 기업의 데이터센터로 모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빅 데이터 서비스의 기술을 맛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7월 한국에 진출해 클라우드 컴퓨팅 ‘아마존 웹서비스’를 전개할 전망이라고 하니 말이다.

 IT인프라 세계 최강이라는 IT강국 한국은 이렇게 또 새로운 기술 국면에 접어들자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IT산업의 태생적 한계와 문화적 환경’에서 찾는다. 인터넷 시대부터 원천기술 없이 얕은 응용기술에 천착한 결과다. 외국의 원천기술을 사다가 시스템 구축과 관리만 하는 변방의 설움은 쭉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포털업체는 세계 포털업체들이 정보 축적의 본업에 충실해 인프라를 구축하는 동안에도 그보다는 광고와 단순 검색에 치중해 돈은 많이 벌었지만 축적된 데이터 인프라는 얕다. 기업들도 업무 활동에 대한 전반적 데이터 축적이 잘 안 돼 있다. 한마디로 인프라가 척박하다.

 또 ‘개인정보보호법’ 등 포괄적 정보 이용에 대한 규제 환경도 난제다. ‘빅 데이터=빅 브러더’로 생각하는 국민들에게 정보의 수집과 활용이 개인정보 보호와 양립할 수 있음을 어떻게 여하히 설득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자! 이제 향후 10년 동안 ‘IT강국’으로 살 것인지 ‘IT 갈라파고스’가 될 것인지 가름해야 하는 시간이 됐다. 업계의 집중적 시장 전략, 정부의 규제 완화와 정책적 지원, 국민의 인식 전환까지 ‘동시 패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럴 때 빠르게 끓어오르는 ‘냄비근성’이라도 제대로 한번 발휘해 봐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