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큐, 에미넴" 英싱어송라이터 다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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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랩으로 세계를 석권한 '악동' 래퍼 에미넴의 콘서트장. 맹렬한 힙합의 울림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등장한 금발의 여가수가 차분한 발라드를 부르기 시작한다. 전혀 색다른 무대에 술렁이던 관중은 이내 환호성을 지르고, 꿈 꾸는 듯한 노래의 매력 속에 빠져든다.

다이도(Dido.28)
가 일으킨 늦바람이 팝계를 달구고 있다. 그녀의 1999년작 '노 에인젤(No Angel)
'은 뛰어난 음악성, 비평가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흥행성적을 기록하지 못한채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던 앨범. 하지만 1년이 넘은 지난해 가을 빌보드 차트에 등장, 지난주에는 10계단이나 상승한 17위를 차지했다. 수 많은 스타들이 명멸하는 미국 시장에서 생소한 영국 가수가 올린 꾸준한 성적이라 더욱 놀랍다.

다이도의 뒤늦은 도약에는 에미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8백만장 판매고를 올린 에미넴 2집 수록곡 '스탠' 앞부분에 다이도의 노래 '쌩큐' 1절이 통째로 들어가며 팬들의 관심을 끈 것. 단지 '쌩큐'의 완전한 버전을 듣기 위해 다이도의 앨범을 구입한 젊은이들은 빛나는 재능에 반해 고스란히 그녀의 팬이 됐다.

에미넴의 콘서트 게스트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다이도는 얼마전 자신의 전미투어를 훌륭히 끝마쳤다. 영·미권을 넘어서 세계로 도약 중인 그녀의 앨범 '노 에인젤'이 최근 국내에도 발매됐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을 절묘하게 혼합한 브릿팝 사운드는 신비롭지만 친근하고, 여성의 내면을 그린 가사는 섬세하다.

다이도를 음악의 길로 이끈 건 다섯살 때 처음 갖게된 리코더. 이듬해 런던의 음악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피아노·바이올린 등 클래식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재원이다. 십대 후반 오빠 롤로의 영향으로 클래식과 팝을 넘나드는 폭 넓은 음악적 시각을 갖게된 다이도는 95년 롤로가 결성한 그룹 페스리스의 보컬로 참여하며 가수가 됐다. 그리고 영국을 중심으로 5백만장이상 판매고를 올린 빅 히트에 고무된 다이도가 내놓은 첫 솔로 앨범이 '노 에인젤'이다.

다이도는 수록곡 전곡의 작곡은 물론 몇몇 곡의 키보드, 리코더 연주를 맡아 깜작 놀랄 재능을 선보이고 있다. 첫 싱글 '히어 위스 미'는 지난해 대선배 사라 브라이트만에 의해 다시 불려졌고, 얼마전 美 TV영화 로스웰의 주제가로도 쓰였다. 앞서 소개한 '쌩큐' 역시 98년 영화 '슬라이딩 도어스'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바있다. 절제된 표현 속에도 깊은 감성의 울림을 담아내는 아름다운 보컬까지 지닌 다이도는 새천년 여성싱어송라이터의 계보를 잇는 기대주다.

'히어 위스 미'는 다이도의 중독성 강한 스타일이 잘 드러난 곡. 힘있는 리듬, 거친 코러스위로 흐르는 아름다운 보컬이 일품이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쌩큐'는 가사와 멜로디, 화성의 완벽한 조화가 인상적인 노래. 봉고를 사용한 퍼쿠션과 다이도의 리코더 솔로도 귀를 사로잡는다. 업템포의 '헌터' '돈 씽크 오브 미' 등도 발라드 못지 않은 매력을 지닌 곡들.

Joins 김근삼 기자 <icoolcat@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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