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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기자의 문학사이 <14> 김주영 장편 『잘 가요,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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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주영

이런 표현은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써볼까. 김주영의 신작 장편 『잘 가요, 엄마』(문학동네)는 통속적인 작품이다. 통속이란 무엇인가. 통할 통(通)에 속인 속(俗)이다. 말하자면 평범한 사람과 잘 통하는 게 통속이다.

 그러니까 문학사이는 말 뜻 그대로의 ‘통속’을 이 작품을 압축하는 단어로 골랐다. 이 말이 아니고서야 일흔셋 노(老) 작가의 매혹적인 소설을 해명할 도리가 없다. 작가는 실제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그대로 작품에 옮겼는데, 그 모성(母性)의 역사는 평범한 독자의 마음과 직통한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문득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무너뜨리는 이름이니까.

 소설의 주인공은 배경원이다. 이 이름을 김주영이라 바꿔 읽어도 무방하리라. 작가는 작심한 듯 자신의 실제 가족사를 100% 옮겼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누더기 같은 가정사”다. 숨기고 싶었던 가족사를 소설을 통해 털어놨다. 배경원의 어머니는 김주영의 어머니다.

 그 어머니는 어떤 인물인가. 평생 “소름 끼칠 정도로 과부하가 걸린 노동”에 시달렸다. “냉수 외에는 배불리 먹어본 음식이 없었을 정도로 궁핍한” 살림 탓이다. 어머니는 두 번 결혼한 여자였다. 아니, 혼인신고란 걸 한 적이 없으니 남편이 둘이었다고 해야 옳다.

 첫 번째는 큰오빠 때문이었다. 아들이 일본에 강제 징용될 처지가 되자 외할아버지는 딸을 유력자 집안에 시집 보냈다. 아들의 징용을 빼주기로 한 대신 딸을 넘긴 게다. 그러나 오빠는 결국 징용됐고, 어머니는 버림받았다.

 두 번째는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목숨이 타 들어가는 가난을 벗어나고자 돈푼 깨나 있다는 남자와 덜컥 살기로 했다. 그러나 그 남자, 그러니까 작가의 의붓아버지의 약속은 허풍이었고, 어머니는 빈털터리인 두 번째 남편까지 책임져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아, 어머니! 그 애달픈 어머니는 늙을수록 더 초라해졌다. 작은 키에 콧등이 땅에 스칠 듯 휠 대로 휜 허리, 주름투성이 얼굴과 손등, 마른 입술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누런 틀니…. 어머니는 그렇게 쪼그라들기만 했다.

 그 어머니가 죽었다. 소설은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동생의 전화로 시작한다. 개가(改嫁)한 여자로서 아들의 삶을 욕보였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장례도 치르지 말고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미숫가루처럼 날리는 어머니의 잔해…. 아들은, 아니 김주영은 중얼거린다. “엄마, 잘 가요.”

 엄마라는 이름은 지극히 통속적이다. 속인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울컥해진다. 우리 문학에 ‘모성소설’이란 장르가 있어도 좋겠다. 어머니는 모든 작가의 문학적 기원이니까. 일흔셋 노 작가는 자신의 문학적 기원을 쓸쓸하게 털어놨다. ‘모성소설’이란 장르가 있다면, 쓸쓸해서 아름다운 이 소설을 맨 앞자리에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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