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누구를 위한 벤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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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염려하는 새해가 밝았다.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탓인가 새해라는 느낌보다 그저 덤덤하게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더 솔직한 느낌이다. 지난 2년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모든 사회가 힘들어 하고 많은 사람이 쓰러지기도 했다.

▶ 미래 내다보는 국가비전

다행스럽게도 다른 나라에서 몇 년 걸려 경험할 일을 우리는 우리답게 1년 만에 뚝딱 해치웠다. 그리고 이제 과거를 교훈 삼아 앞을 향해 힘차게 뛸 일만 남은 것 같다.

벤처산업도 이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큰 폭풍을 맞았던 것이 사실이다.

과연 우리의 벤처산업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우선 10년 뒤에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의 국가가 돼 있을까 생각해 보자.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비전으로 똘똘 뭉쳐 그에 반하는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잘 살기 위해서라면 죽음을 각오하고 뛰었던 우리 선배들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선진국이 돼 있을까. ' 굶주림을 벗어난 우리 자녀들이 만족할 수 있는 나라가 됐을까. 만약 선진국이 됐다면 그 안의 개인들은 어떤 행복을 추구하게 될까. '

우리는 지금 바로 온 국민이 공감하는 명확한 국가 비전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그 희망찬 비전과 현실의 격차가 바로 우리를 이끌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지식강국으로서의 국가 비전은 고객인 국민 개개인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마음껏 추구하고 그 다양성을 사회가 존중하고 세계가 인정해 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개성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 돕고 나누고 그러는 가운데 새로운 가치를 무한히 탄생시킬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지식산업사회가 아니겠는가.

요사이 건설현장을 보라. 마치 조립식 집짓기 하듯 쌓아 올라간다. 다리도 그렇게 놓는다. 공기가 단축됨은 물론 건설비도 절약된다.

이것이 바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다른 이들의 개성과 능력을 믿고 빌려쓰는 지혜요, 바로 e-비즈니스의 기본개념이다. 벤처산업이 우리의 미래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마치 조립식으로 집을 짓듯이 지식사회가 요구하는 최고의 부가가치를 신속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공룡이 퇴화한 것은 머리보다 몸집이 너무 커서라고 하지 않던가.

작은 개성과 능력이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생태계의 중심이 바로 이 나라가 돼야 한다.

그러므로 벤처산업의 지혜가 국가 전체의 시스템으로 얼마나 빨리 접목되느냐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한 인프라는 창업자금도, 벤처단지도 아니다. 바로 원칙과 보상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다.

엄격한 룰을 적용해야 게임이 재미있다. 최고의 보상과 공정성은 최고의 선수를 만들어 낸다.

지식사회는 다양성이 존재해야 하는 사회다. 바둑을 보라. 아주 단순한 법칙만이 존재하지만 게임의 방법은 무궁무진하지 않던가.

하지만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복잡하고 지키지도 못할 수도 없이 많은 룰을 가지고 부정하고 공정하지 못한 게임을 하고 있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개념과 승리만이 살 길이라는 식의 전쟁논리만이 난무할 뿐이다.

이런 원칙이 없고 불공정한 시스템은 우수한 인적자원을 최고의 권위와 보상이 있는 곳으로 빼앗기게 될 것이다.

▶ 최고 발굴 시스템 만들자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탄생하지 못하고 꼭 나라 밖에서 스타가 돼 돌아오는 이유를 곰곰 생각해 봐야 한다.

박찬호 선수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 야구팬들이 다저스의 팬이 됐고 그를 보기 위해 막대한 위성방송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에 메이저리그와 같은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많은 제2, 제3의 박찬호를 이 땅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부가가치에 대한 과실을 국가가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21세기 지식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룰이 적용되는 가운데 다양한 최고를 발굴해야 한다.

정부 예산도 불필요한 하드웨어나 저변확대에 쓰지 말고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최고를 찾는 데 사용해야 한다.

입장료를 대주고 게임에 참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상금을 걸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벤처산업 성장의 원동력이다.

지난해의 값진 경험을 토대로 국가전략으로서의 벤처산업 육성에 모두 함께 하기를 바랄 뿐이다.

전하진 <한글과 컴퓨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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