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기록한 '환란일기' 생생한 사실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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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3년이 흘렀다. 아직 충격이 가라앉지 않았고 아픔은 치유되지 못했다. 정부가 IMF체제를 벗어났다고 선언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제2위기의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돌이켜 보면 개인을 환란의 희생양으로 삼은 데서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1999년 말에 출간된 강경식 전 부총리의 '환란일기' 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그는 97년 3월 표류하는 난파선에 올라탔다. 위기에 처한 나라경제를 추스르고 장기발전의 틀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에서였다. 한보와 기아 처리, 금융개혁에 혼신의 힘을 바쳤고 외환위기를 막기 위해 노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해 11월 중순 부총리직에서 해임되었고, 98년 5월에는 환란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99년 8월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억울한 심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을 것이다.

'환란일기' 를 보면 안타까운 사실들이 눈에 띈다. 위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펀더멘털을 믿고 중장기 비전, 경제홍보, 금융개혁법안 등에 매달렸을 정도로 변화에 둔감했다. 사소한 일들에 열중하고 있다가 큰 흐름을 놓쳤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환란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난파선에서 키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죄인으로 지목되었고 형사처벌까지 받을 뻔했다. 당시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던 선장, 배에 구멍을 낸 사람, 나침반을 망가뜨린 사람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으니 억울한 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실직자.서민.농민.부도기업가 등과 비교하면 억울한 정도가 덜하다. 본인의 희생으로 분노한 국민을 조금이나마 달랬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자.

아직 환란의 원인은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내부 결함, 외부 충격, 월가의 음모 등이 원인으로 제시되었을 뿐 진지한 고민과 반성은 없다. 감사원 자료, 검찰 수사기록 등이 있지만 정부 공식보고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현장에서 자세하게 기록을 한 '환란일기' 는 차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97년 8월 IMF 지원을 받은 태국의 경우 98년 4월에 '누쿨보고서' 를 만들었다.

환란 원인이 정책판단 잘못에 있다고 보고 중앙은행 총재를 사임시켰으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이에 비해 우리는 관료들을 법정에 세웠으나 무죄 판결이 남으로써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환란 원인에 대해 국민적 공감을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개혁에 나서야 했는데 용두사미 식으로 일이 처리된 것이다. 원인규명 미흡과 함께 환란 이후의 시스템 개혁도 아쉬움이 남는다. 새 정부가 실시한 개혁조치들은 거의 과거 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다.

'환란일기' 에서 이슈가 된 부실기업 처리, 정리해고, 금융개혁, 벤처육성 등은 여전히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다. 새 정부가 이들 정책을 제대로 계승했더라면 결과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개혁 방식이 과거보다 나아졌는지도 반문해 볼 일이다. 각자 열심히 뛰는데 전체로는 결단이 미루어지고 정책이 겉도는 측면이 강하다.

경제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과거 30년간 작동했던 경제의 틀이 환란 전후의 충격으로 균열이 생기고 각도가 기울었다. 이후 3년간 수리를 한다고 했지만 부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대외여건이 좋아서 그나마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해외여건이 나빠지면 제2 환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구하고는 죽어서 '난중일기' 라는 영웅의 기록을 남겼다. '환란일기' 는 나라를 구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다.

그렇지만 위기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단초가 들어있는 귀중한 자료다. 영웅이 나타나 위기재발을 막고 그 이야기가 '환란극복 일기' 로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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