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채 잡은 선봉대는 한복판서 삭발 대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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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 참석한 당권파 청년 참관인들이 구호카드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박자은(左), 정용필(右)

조직적인 기획폭력의 선봉대.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운영위원회에서 폭력을 휘두른 대학생 200여 명을 비당권파는 이렇게 규정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는 14일 라디오방송에서 “매우 잘 준비하고 현장에서 조직적으로 지휘해서 폭력사태가 일어났다고 느꼈다”고 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트위터에서 “단상 점거와 대표단 폭행은 사건 성격상 윗선의 지침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으로, 아주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대표단 습격은 미리 프로그래밍돼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운영위가 열리는 날 오전 이들 대학생은 종이컵에 뻥튀기 과자를 담아 ‘진상조사단 뻥튀기’라고 팔기 시작했다. 이들은 운영위가 시작되자 회의장 뒤편에 모여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유시민·심상정 전 공동대표의 말엔 야유와 비아냥을 쏟아냈다. 심상정 전 공동대표가 첫 번째 안건이 통과됐다고 선언하자 약속했다는 듯이 단상 앞으로 움직였다. 당 학생위원회 소속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단상에 올라가 구호를 선창하면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복창했다. 이후 일거에 단상을 점거해 들어갔다.

 이들에 대해 한 당직자는 “한대련(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과 당 학생위원회 소속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회의장에는 정용필 한대련 의장, 박자은(현 당 학생위원장) 전 의장, 정수연 당 서울시당 학생위원장 등이 눈에 띄었다. 한대련 집행위원장 출신인 김재연 당선인도 있었다.

 한대련은 지난해 ‘반값등록금 투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박자은 의장은 서울 한복판에서 삭발을 했다. 그는 올해 청년비례대표 선관위 대변인을 맡으며 통합진보당에 입당했다. 이들은 4~5일 이틀간 열린 전국운영위에서도 스크럼을 짜고 입구를 봉쇄하며 회의를 조직적으로 방해했었다. 당 관계자는 “한대련 소속 학생들이 지난 수년간 꾸준히 입당해 세를 늘렸다”고 전했다. 2005년 출범한 한대련은 올해로 8기 의장 체제를 맞았다. 고려대·숙명여대 등 전국 20여 개 총학생회가 소속돼 있다. 단과대 학생회까지 합하면 80여 개 대학이 한대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종북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던 한총련과 다른 독자적인 조직이 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대련의 일부 대학은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비당권파의 한 관계자는 “당권파가 한대련 소속 일부 총학생회를 관리해 왔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당권파가 대학 총학생회 선거를 기획하고 선거운동까지 해줬다. 관리하고 키워온 셈이다. 이렇게 관리된 학생들은 다시 당원으로 들어와 당권파의 우호세력이 됐다. 비당권파에선 이런 프로젝트를 CNP전략그룹이 관리해 왔다고 주장한다. CNP전략그룹은 당권파의 실세로 불리는 이석기 당선인이 한때 대표로 있던 곳이다. 현 대표는 금영재씨다.

 중앙위원회를 며칠 앞두고 조국 서울대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수십 년 만에 ‘용팔이 사태’를 보는 것은 아닐지”라고 썼다. 용팔이 사건은 1987년 4월 통일민주당 20여 개 지구당에 정치깡패 용팔이가 부리는 폭력배가 난입해 창당을 방해한 사건이다. 폭력을 실행한 것은 용팔이였지만, 이를 기획한 것은 군사정권의 국가안전기획부였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용팔이 사건은) 돈을 주고 외부의 폭력배를 동원한 일인데, 이번 사건은 그걸 능가하고 있다. 당원·당직자·당간부라는 사람들이 당의 가장 권위 있는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는 의장단을 습격했다는 점에서 죄질은 비할 바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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