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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값 리터당 2000원, 정유사의 폭리인가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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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막대한 이익 규모를 놓고 정유사들도 끙끙대고 있다. 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불거지는, ‘기름값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다. 기름값이 L당 2000원을 넘어서면서 이런 압박은 더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정유사들은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4사를 통틀어 매출액 167조원, 영업이익은 7조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30% 이상 늘었다. 정유사들은 “지난해 2분기에 회사별로 L당 석유제품 100원 할인을 시행하며 국내 정유부문 이익이 크게 줄었지만 연간 실적이 발표되면서 정유사업 부문에서의 부진은 묻혀버리고 오히려 호황을 누렸다는 인식이 퍼져 곤혹스럽다”고 하고 있다.

 수치를 들여다보면 정유사들의 얘기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지난해 정유 4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3%였다. 1000원 어치를 팔아 43원을 남겼다는 얘기다. 그러나 원유에서 휘발유·경유 등을 뽑아 팔아 이익을 내는 ‘정유사업’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전체의 절반 수준인 평균 2.1%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전체 제조업체 평균 영업이익률은 6.34%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지난해 정유부문에서 매출 49조4009억원에 영업이익 1조2416억원으로 2.5%, GS칼텍스는 매출 39조원에 영업이익 6527억원으로 1.7%였다. 에쓰오일도 정유부문에서 영업이익률이 1.9%에 지나지 않았다. 대한석유협회 주정빈 홍보실장은 “석유제품 판매 중에서도 국내보다 값을 상대적으로 높게 받는 수출 물량이 50% 이상 되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실제 국내에서 기름을 팔아 거의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올 1분기 GS칼텍스의 정유부문 영업이익률은 0.4%, 에쓰오일은 1.3%로 더욱 떨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유사들은 정유사업보다는 윤활유의 원료를 만드는 윤활기유와 석유화학사업에 치중하는 형편이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윤활기유 사업에서 매출 2조4626억원, 영업이익 7175억원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이 29%에 달했다. 매출은 회사 전체 매출(31조 9139억원)의 7%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체 영업이익의 44%를 윤활기유에서 만들어냈다. GS칼텍스 역시 윤활기유 사업의 영업이익률이 37%에 달했고, 회사 전체 영업이익의 25%를 책임졌다. SK이노베이션의 윤활기유 사업을 담당하는 SK루브리컨츠는 지난해 매출 2조7134억원에 영업이익 510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19%로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 전체 영업이익률(4.2%)의 5배에 가까웠다. 현실이 이런데도 실적이 발표되면 “국내에서 휘발유·경유값을 비싸게 받아 폭리를 취한다”는 논란에 휩싸여 곤혹스럽다는 것이 정유사들의 얘기다.

 이와 관련해 서강대 이덕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과) 교수는 “국내 휘발유·경유값이 오를 때마다 반복해 ‘폭리’ 도마에 오르는 정유사들로서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국내 시장에서 취하는 영업이익에 대한 투명한 자료를 소비자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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