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안경 날아가고, 조준호는 두들겨 맞아 탈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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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호 03면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중앙위원들이 표찰을 들어 올리고 있다. 회의 시작 전에 참석인원을 확정하기 위한 절차로, 표찰엔 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다. 조용철 기자

“진상조사 뻥튀기 팝니다, 뻥뻥뻥.”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장으로 당권파의 비례대표 선거 부정을 파헤친 조준호 공동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 공동대표는 12일 오전 11시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참석차 회의장인 일산 킨텍스(KINTEX) 3층 그랜드볼룸에 들어서던 길이었다. 회의장 입구에 뻥튀기를 펼쳐 놓은 채 통합진보당 당권파 당원들이 조 대표에게 야유를 퍼부은 것이다. 이날 파행을 거듭한 통합진보당의 첫 중앙위원회 모습을 예고하는 장면이었다.

난장판 된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당권파의 의사 방해는 조직적이고 집요했다. 당권파 중 정식 회의 참가자인 중앙위원들은 회의 성원 문제를 두고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이의 신청을 끝없이 제기해 회의 진행을 막았다. 의장단과 당 사무국이 아무리 해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중앙위원이 아닌 300여 명의 당권파 당원들은 참관인석을 장악하고 야유와 고함으로 회의를 막았다. 당권파 중앙위원들이 “유령 중앙위원들이 의도를 가지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문제 삼으면 뒤쪽의 참관인석에서 당권파 당원들의 “옳소”라는 고함과 박수가 쏟아지는 형식이었다. 지난해 12월 ‘대중적 진보주의’를 펼치기 위해 작은 차이는 극복하겠다며 통합한 같은 정당의 ‘동지’는 아니었다.

준비된 필리버스터
이날 중앙위원회의 파행은 아침 일찍부터 감지됐다. 당권파 당원들은 일찌감치 회의장인 킨텍스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오전 9시30분. 전국에서 오는 중앙위원들의 대부분이 도착도 하기 전인 이른 아침부터 이미 킨텍스 건물 외부와 회의장인 그랜드볼룸 주변은 각종 플래카드 50여 개로 도배됐다.

‘당원 가슴에 대못질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폐기하라’ ‘노동자 망신 조준호 대표 당기위 제소’ ‘전국운영위원회 전자투표는 쿠데타다. 당원 총투표 실시하라’ ‘당원들의 진정한 대표, 이정희 대표님 힘내세요’ 등 당권파의 주장을 담은 내용들이었다. 비례대표 총사퇴 등 비당권파 주장을 담은 플래카드는 오후 1시를 넘겨서야 3~4개가 내걸렸다. 당권파 측은 일찌감치 이날 대회 분위기를 장악하려 애썼다.

오전 10시 전후 그랜드볼룸 주변의 소파에는 많은 당원들이 눈에 띄었다. 코를 골며 자는 이들도 있었다. 2층 소파에 있던 당원 김모(31)씨는 “조준호 대표가 무슨 마음으로 당원들에게 상처를 줬는지 모르겠다”며 “이번 선거는 당원들이 뽑은 것으로 중앙위원이 뒤엎을 수 없다”고 말했다. 킨텍스 밖 벤치에 앉아 있던 당원 최창준(57)씨는 “조준호 대표의 진상보고서는 진실에 기초해 있다고 보지 않으며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날 중앙위원회는 국민의례 없이 진행됐다. 통합진보당은 창당 이후 공식 회의에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 뒤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절충안을 동원해 왔다. 그러나 이날 중앙위는 이 같은 절충 의례 대신 지난해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한국진보연대 전 대표 정광훈 의장의 추모 동영상을 상영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공식 의례 없이 중앙위를 시작한 데 대해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그냥 본 대로 이해해 달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회의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이날 오후 예정보다 조금 늦은 오후 2시15분 시작된 중앙위원회는 회의 참석 인원(성원)을 확정하고, 안건을 어떤 순서로 처리할지(회순)를 정하는 데에만 2시간이 걸렸다. 이날 의장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는 차분하고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당권파는 계속해서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당권파가 계속 반복한 주장은 중앙위원 구성이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옛 국민참여당몫 중앙위원 중에 갑자기 사람이 바뀌거나 추가된 경우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당권파 이명주 중앙위원(충북도당 사무처장)은 “충북은 참여당몫 중앙위원 12명 중 4명이 중앙위원회를 며칠 앞둔 9일 교체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용신 당 사무부총장은 “중앙위원은 통합진보당을 구성하는 옛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각 통합 주체들에게 명단 구성을 일임했던 사안”이라 고 해명했다. 유시민 공동대표는 “옛 국민참여당 중앙위원 중 개인 사정으로 사퇴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여성 몫을 늘리는 등 조정 과정에서 불거진 오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명에도 불구하고 당권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속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 비슷한 유형의 질문을 계속했다. 현장에서 중앙위원들의 주민번호 등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계속 반복 제기했다.

당권파는 오후 4시45분부터 1시간20분 넘게 ‘불법 중앙위, 중단하라’는 구호를 끝없이 외쳤다. 의장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의 마이크 목소리는 연호에 묻혔다. 결국 심 공동대표는 정회를 선언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6시50분 속개된 회의도 얼마 못 가 다시 파행으로 이어졌다. 당권파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나섰다. 의사 진행에 대해 수십 명의 당권파 중앙위원과 참관인들이 회의장 앞으로 몰려나와 단상 앞을 점거하고 회의 진행을 막았다.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나선 심상정 공동대표가 회의 진행을 시도하자 한 당권파 당원은 “왜 발언 기회를 주지 않는가. 이게 국회에서 보던 날치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수적 우위에 있는 비당권파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반응을 보였다. 8시30분 회의가 속개되자 비당권파 중앙위원들은 환호·박수와 함께 ‘심상정’을 연호하며 당권파 당원들과 한동안 구호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밤 10시쯤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심상정 공동대표가 당헌 개정안 처리에 나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킬까요라고 묻자 의사진행에 반발한 당권파 당원들은 갑자기 단상으로 올라가며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유시민 공동대표는 안경이 날아가고, 조준호 공동대표는 당권파 당원들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두들겨 맞아 탈진했다. 정당의 대표단이 당원들에게 두드려 맞는 순간이었다. 결국 공동대표단 3명은 모두 단상을 떠나 대기실로 대피했다.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여야가 벌였던 극단적인 폭력 국회의 모습이 진보정당의 최고 의결기구에서 벌어진 것이다.

중앙위 성원 놓고 끝없는 공방
당권파가 모든 당원이 참가하는 당원 총회 다음의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 방해에 조직적으로 나선 것은, 중앙위원 구성에서 열세이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 출신의 한 인사는 “당권파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비례대표 총사퇴안을 막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 것”이라며 “전 언론이 지켜보고 있어도, 전국의 중앙위원들이 등을 돌려도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중앙위원과 당원들의 의견은 파벌에 따라 판이하게 엇갈렸다. 당권파 당원 황규범(37)씨는 “자기 가족이 살인을 저질렀어도 가족이라면 일단 믿어줘야 하지 않나. 그런데 조준호 대표는 부실한 조사로 당원이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당권파로 추정되는 당원 이정민(50)씨도 “비례대표 선거가 부실했던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부정한 선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날 당권파가 문제 삼은 중앙위원 명단 조작설에 대해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이들이 중앙위원이 됐다는데 당원들에게 명확히 해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이날 회의장 바깥에서 ‘통합진보당의 개혁 노력을 지지합니다’라는 현수막 들고 있던 당원 박경민(40)씨는 “부정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진상조사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분명 이번 비례대표 선거 때 문제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비당권파 중앙위원인 김모씨는 “부실이지만 부정은 아니라는 당권파 쪽 주장은 당 바깥 사람들이 보기에 말장난에 불과한 것 아니냐”며 “잘못한 부분 깨끗하게 털고 반성하자는 것인데, 무슨 자기들을 잡아먹는다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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