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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가난한 사람은 어리석어서 아이 많이 낳는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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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이순희 옮김, 생각연구소
396쪽, 1만7000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옛말, 정말 그럴까. 빈곤퇴치연구소를 운영하는 개발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이 책에서 “방법은 있다”고 말한다. 빈곤에 대한 경제학자의 태도는 둘로 나뉜다. 무조건적 원조를 통해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입장(제프리 삭스 등)과 자유시장 시스템을 통해 사회가 스스로 빈곤의 해결방안을 찾아내야 한다는 주장(윌리엄 이스털리 등)이다. 저자는 어느 쪽이 옳다고 판단을 내리기 전에, 빈곤한 사람들의 실제 현실과 행동양태를 유심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저자들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기보다는, 일견 어리석어 보이는 이들의 선택에도 ‘나름의’ 판단기준과 이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가난한 이들은 미래의 큰 이익보다 당장 감수해야 할 작은 손해를 크게 느끼기 때문에, 말라리아 예방을 위한 모기장을 사지 않는다. 아홉 명의 아이를 낳은 빈곤층 여성에게는 피임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결정권이 없었다. 연구진은 자연과학에서 사용하는 ‘무작위 대조실험(대등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조건을 제시)’을 통해 어떤 조건이 이들의 행동패턴을 바꿀 수 있는지 분석하고, 사안에 따른 가장 효과적인 빈곤퇴치 방안을 탐구한다.

 저자들의 제안은 꽤 실용적이다. 곡물 원조보다는 임산부와 유아에 영양제를 공급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영양상태 개선에 효과적이며, 빈곤층의 보험에 보조금을 지급하면 미래소득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 도입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충족적 예언’이다. 쉼 없는 노력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작은 아이디어가 언젠가 가난의 뿌리를 근절할 수 있다는 확신 없이,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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