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인사이트] 펀드 매니저의 반성 … 고객 돈 아닌 회사 돈 버는 데 더 신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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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안혜리
증권팀장

펀드 수난시대입니다. 올 들어 주식형 펀드에서만 4조원이 넘는 돈이 빠져나갔습니다. 적립식 펀드는 2008년 정점을 찍은 뒤 4년 만에 계좌수가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운용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위기를 말합니다. 누구는 “10%룰(펀드 안에 한 종목을 10% 이상 담을 수 없도록 한 규정) 같은 제도가 펀드의 발목을 잡는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은행·증권사 등이 판매 수수료를 더 많이, 더 자주 챙길 수 있는 다른 금융상품 판매에만 열을 올린다”며 판매사 탓을 하기도 합니다. 원인분석은 제각각이지만 결론은 “위기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로 모아집니다. 마치 금융감독 당국이나 판매사는 가해자, 운용업계는 피해자라도 된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말이죠.

 그런데 프랭클린템플턴 투신운용에서 주식운용을 총괄하는 오성식 부사장은 좀 다른 얘기를 하더군요. 오 부사장은 “오히려 운용업계가 반성해야 한다”고 자성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펀드에서 돈이 빠지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운용업계가 그동안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오 부사장의 반성은 신랄합니다. 그는 “그동안 운용업계가 대체로 고객 돈이 아니라 운용사 자신의 돈을 버는 데 더 신경을 써 왔다”며 “펀드에 투자했다가 본전은커녕 손해본 고객에게 다시 펀드를 권한다고 고객이 돌아오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펀드 투자로 손해본 투자자가 넘쳐나는 동안 많은 운용사는 더 큰 돈을 벌고 외형을 불린 게 사실입니다. 그는 “나라도 펀드 투자 안 한다”고까지 하더군요. 고객에게는 운용사의 투자철학을 보고 장기 투자하라고 권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최고경영자(CEO)나 펀드매니저를 빈번하게 갈아치우니 고객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면서요.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길재홍 이사는 “국내 모든 운용사에 투자철학을 물으면 다들 ‘가치투자’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론 뭐든 잘된다 싶으면 한쪽으로만 쏠리는 ‘같이’ 투자를 해오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런 ‘몰빵투자’의 후유증은 고스란히 고객이 떠안기 일쑤였죠.

 비슷한 반성의 목소리는 키움자산운용 윤수영 대표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펀드의 위기를 말하기에 앞서 업계의 반성과 자성이 먼저”라며 “벤치마크(기준으로 삼는 지수) 대비 수익률을 제시하는 펀드업계의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펀드는 다양한 투자수단 중 하나고, 고객 입장에서 보면 펀드든, 다른 금융상품이든 수익을 안겨줘야만 선택을 한다”는 거죠. 그런데 수익률이 나쁠 때마다 ‘펀드 수익률 1위’라거나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 우수’라는 식으로 고객을 현혹하면 결국 고객이 다른 상품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윤 대표는 “운용업계가 수익률이 나쁠 때에만 투자자에게 (환매를 하지 말라며) 장기투자를 강조한다”며 “고객을 위한 투자론이 아니라 단순한 변명거리가 아닌가 싶다”고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또 “요즘처럼 펀드 팔기가 어려울수록 금융지주 등 판매사의 계열사 밀어주기가 기승을 부리는데, 이 역시 거꾸로 보면 이름만 다를 뿐 운용사마다 다 비슷한 펀드만 내놓으니 뭘 갖다 팔아도 그만인 게 아니냐”는 반성도 하더군요.

 그럼 투자자는 펀드를 외면해야 할까요. 예측가능한 펀드와 반복가능한 펀드를 고르라는 오 부사장 말을 한번 귀기울일 만합니다. 예컨대 중국 증시가 좋다면 중국펀드 수익률도 같이 좋고 올해만 반짝 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성과가 좋은 펀드, 이런 펀드 말입니다. 선택은 결국 투자자 몫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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