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외국인들 '빌딩 사냥'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0월 서울 역삼동 24층짜리 현대중공업 빌딩을 사들인 네덜란드 로담코사는 1년 만에 투자수익률을 두배 가까이 올렸다.

건물 가치는 현재의 임대료를 역산(逆算)해 따진다.

로담코가 지난해 10월 막 준공한 이 건물을 살 때 현대중공업이 사무실의 절반 이상에 대한 임대를 책임지는 조건을 달았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산업개발 등을 평당 3백30만원(전세 기준)의 임대료를 받고 입주시켰다. 이 시세를 기준으로 빌딩 값을 매겨 1천4백억원에 매매계약이 이뤄졌다.

지난해 말부터 서울 테헤란로 일대에서 사무실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이 건물의 임대료는 평당 5백만원을 넘어섰고 요즘은 6백50만원에도 계약된다.

따라서 로담코는 임대수입 외에 80% 이상의 투자이익을 본 셈이다. 로담코는 1년 만에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자 일부 건물 지분을 팔기 시작했다.

서울 세종로 파이낸스센터가 싱가포르 투자청에 4천4백50억원에 팔린 것을 비롯, 최근 1년새 20여개의 빌딩이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줄잡아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서울 역삼동 I타워와 신문로 금호빌딩, 동자동 벽산125빌딩 등 굵직한 매물이 나와 있어 외국인의 빌딩 사냥은 계속될 전망이다.

BS컨설팅 김상훈 사장은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부동산을 내놓아 대형건물 가격이 떨어진 틈을 타 투자 차원에서 사들이는 외국인이 많다" 며 "임대 수요가 충분하고 값도 오를 것으로 보기 때문" 이라고 전했다.

◇ 위치를 보고 산다〓막 준공했거나 완공 단계인 건물이 주된 공략 대상이다. 쉽게 수익률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서앤더슨 임승옥 상무는 "최근 외국인들이 국내 대형건물을 많이 사는 것은 부동산 시장 전망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는 증거" 라며 "그러나 나대지를 사들여 빌딩을 짓는 개발형 장기투자는 피한다" 고 말했다.

2~3년 안에 수익을 극대화하는 '치고 빠지기' 식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빌딩의 규모와 시설보다 입지를 따진다.

홍콩 투자회사인 H사 관계자는 "서울 강남보다 임대 수요가 안정적인 도심이 적격" 이라고 말했다.

최근 거래된 물건 대부분이 10층 이하, 2백억~5백억원 규모의 도심 빌딩이다.

◇ 철저하게 수익률을 따진다〓서울 강남지역 빌딩의 투자수익률이 연 8~10%, 강북권이 10~12%로 외국보다 높아 외국인들이 매력을 느낀다.

더구나 임대율도 어지간하면 90% 이상이므로 사무실을 놀리지 않는다.

일정기간 임대하다 만족할 만한 투자수익을 얻으면 언제든 팔고 손을 턴다. 토지 등 다른 부동산이 수익을 예상하기 어려운 데 비해 건물은 2~3년간 투자수익률을 예측할 수 있다. 빌딩에 매기가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토털컴퍼니 이준호 전무는 "내년에 부동산투자신탁(리츠 : REITs)제도가 도입되면 시장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보는 외국 회사들이 목 좋은 건물을 선점하기 위해 매입에 적극적" 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빌딩을 사들인 G.R.L사 등은 리츠 도입에 대비해 빌딩 몇개를 출자전환하는 방식으로 투자회사를 만들어 코스닥시장에 등록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좋은 물건을 싼값에 사두었다가 내년에 리츠회사가 생기면 되팔아 차익을 남긴다는 복안이다.

◇ 일부 매입자금 국내 은행에서 빌려〓외국회사들은 매입대금의 70~80%를 국내에서 조달한다.

건물 중개업체 관계자는 "말이 외자유치이지 내막을 뜯어보면 대부분 국내 은행에서 빌리거나 임대보증금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고 말했다.

로담코도 현대중공업 빌딩을 살 때 4백50억원을 한빛은행에서 조달했다. 회사의 신용등급도 높고 네덜란드 로담코은행이 보증을 섰기 때문에 싼 이자로 빌릴 수 있었다.

여기에 임대보증금을 합치면 순수하게 들어간 자기자금은 30% 정도다. 달러로 건물을 매입할 경우 나중에 되팔 때 생길지 모르는 환차손(換差損)위험을 덜자는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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