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4시, 서울 강북구의 우이초등학교 운동장. 유니폼을 폼나게 차려입은 이 학교의 여자축구선수들이 친선경기를 위해 모였다. “우리 한번 해보자” “패스 잘하고 잘 챙겨주자.”
상대는 이 학교의 남학생 축구동아리. 양팀은 경기 전부터 신경전이 치열했다. 남학생들이 “여자들이 우릴 이길 수 있겠느냐”며 자극하자 여자선수들은 “지금 깔보는 것이냐”며 맞섰다. 경기 결과는 1-2, 여자축구부의 아쉬운 패배였다. 하지만 경기 내내 여자선수들은 서로를 격려해가며 남학생들과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이 여자축구부는 2010년 말 창단했다. 우이초 출신으로 2003년 남자축구부 부코치로 부임했던 유열(30) 감독이 창단을 이끌었다. 그는 “축구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많은데 제대로 배울 팀이 없는 게 안타까워 팀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초등학교 중 여자축구부가 있는 곳은 우이초와 송파초 두 곳뿐이다.
창단 1년 반 동안 아이들은 팀워크가 생명인 축구를 배우면서 동료애의 필요성도 자연스레 깨달았다. 유 감독의 지도법도 한몫했다. 그는 지난해 말 6학년이던 박모(13)양이 3학년 후배의 돈을 여러 차례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박양은 이전에도 유사한 잘못을 종종 저질러 아이들 사이에서 ‘일진’으로 통했다. 유 감독은 즉시 훈련을 중단하고 선수 전원을 꾸짖었다. 가져간 돈도 돌려주게 했다. 박양은 “나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모두 혼나는 걸 보고는 잘못을 많이 깨달았다”고 했다. 그 뒤 박양의 태도는 달라졌고 올해 중학생이 된 뒤에도 모범적인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유 감독은 “지금도 아이들끼리 다투는 사실을 알면 바로 훈련을 중단하고 잘못을 깨닫게 한다”며 “이렇게 협력하고 서로 위해주다 보면 친구를 괴롭히는 마음과 태도도 자연스레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 축구부의 지난해까지 성적은 22전1승1무20패로 초라하다. 하지만 이성택(56) 체육교사는 “여자축구부가 생긴 뒤 학교 분위기가 더 밝아졌다”며 “성적보다 더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이 축구부엔 요즘 큰 목표가 생겼다. 라이벌 송파초를 어렵게 누르고 서울시 대표가 돼 이달 말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한다. 축구부 주장 안혜록(12)양은 “우리 팀은 서로 적극적으로 보살피고 격려하는 게 강점”이라며 “이 힘을 바탕으로 4강에 오르는 게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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