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즈 잡을 줄 알았겠나, 꿈을 잃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양용은은 남자 선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고구마라 불리는 하이브리드를 4개나 들고 다닌다. 고구마 전도사다. 지난 4월 초 열린 마스터스에서 가수 이승철씨는 양용은이 하이브리드를 꺼내 들면 샷을 보지도 않고 그냥 그린 쪽으로 걸어갔다. 이씨는 “워낙 하이브리드를 잘 쳐 실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프리랜서 박충열]

“살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네요.”

 프로 골퍼 양용은(40·KB국민은행)이 서울과학기술대의 명예 교수가 됐다. 그는 지난 2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운동은 악착같이 했지만 공부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제게 이런 일이…”라면서 껄껄 웃었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과기대에서 한두 시간 정도 학생들에게 꿈을 주고 싶다고 했다.

 “요즘 학업 때문에 똑똑한 대학생들이, 폭력 때문에 중·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너무나 안타까워요.”

 그는 어떻게든 살아 남으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여긴다. “어릴 때 어렵게 자랐지만 관상을 보는 할아버지가 내 귀가 좋아 보이니 어디서든 먹고사는 데는 지장 없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 얘기를 믿고 살았죠. 그러다 보니 좋은 것들이 생겼죠. 내가 타이거 우즈를 꺾고 아시아 첫 메이저대회 우승자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양용은은 무명 시절 겨울 전지훈련비가 모자라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동남아에서 훈련을 한 일이 있다. 그의 부인 박영주씨가 전훈지에 따라가 주니어 선수들의 밥을 해줬다. 그와 형제처럼 지내는 가수 이승철씨는 “자기 아이들은 남의 집에 맡겨 놓고, 다른 아이들 밥 해주는 양용은 선수 부부 마음이 어땠겠어요. 그래도 양용은은 뚝심이 있고 자신을 믿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스무 살이 다 되어 골프를 시작한 그의 성공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보면 0이었다. 잘될 거라는 믿음이 여러 차례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2008년 미국 PGA 투어 Q스쿨 2차 때도 그랬다. “마지막 4개 홀을 남기고 커트라인보다 4타가 많았어요. 코스를 따라 돌던 아내가 ‘올해도 틀렸구나’라면서 클럽하우스로 돌아갔지요.”

 양용은은 그때부터 홀인원과 버디, 이글을 잡으면서 극적인 역전을 일궜다. 2009년 그는 메이저 우승자가 됐다. “인생에 그렇게 큰 행운이 찾아오리라곤 정말 상상도 못했죠. 오래 살아야죠, 그래야 그 꿈을 볼 수 있지 않나요.”

 양용은은 2일엔 난치성 질병 치료 연구 등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5000만원을 기부했다. 불교 신자로 템플스테이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예전엔 최경주 선배를 보고 그냥 따라 했는데 몇 년 지나니 저도 기부의 의미를 알게 된 것 같아요. 내가 도울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르꼬끄배 중·고등학생 골프대회도 개최한다. 양용은은 “나는 골프선수로서 주니어 시절이란 것을 거치지 못했지만 후배들은 잘 키우고 싶어요. 은퇴 후의 목표는 최고의 선수를 양성할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입니다. 올해 대회 우승자는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도 보낼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양용은은 올해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하다. 그러나 여유가 있다. 그는 “예전처럼 조급하지 않아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올해 디 오픈을 목표로 스윙 교정을 하고 있는데 스케줄에 따라 가고 있다고 봅니다. 가장 오래된 메이저에서 우승하는 꿈을 꾸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