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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서 인간으로 진화…마약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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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마약의 역사
조성권 지음, 인간사랑
293쪽, 1만7000원

마약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하기 때문인가, 약하기 때문인가. 범죄학자인 지은이는 다른 차원에서 마약을 살핀다. 마약은 인간 역사와 궤를 함께하면서 원시시대부터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을 부패시켜왔다는 데 주목한다. 인간과 마약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역사를 살핀다.

 책 머리에서 마약이 인류 진화를 이끌었다는 주장을 소개하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식물 속 환각성분의 효능을 발견한 ‘마약 원숭이’들이 이를 섭취해 뇌를 자극함으로써 인류로 진화를 이뤘다는 놀라운 가설이다. 환각제 연구로 유명한 미국 철학자 테렌스 매케나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원시종교는 사실상 ‘마약교’였다. 샤머니즘의 사제인 샤먼은 자연산 향정신성 의약품 지식을 독점했다. 황홀경 상태가 되어 환상적 종교의식을 집행하기 위해선 이런 지식이 필수적이었다. 그렇게 중요했기에 인류는 문자를 발명한 초기부터 마리화나·아편·환각 독버섯·코카잎 등 마약류 및 향정신성 물질에 대해 기록했다. 심지어 원시시대 고대 벽화에서도 환각식물이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에선 마약이 생필품이나 다름없었다.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는 곡식과 양귀비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히포크라테스는 아편을 ‘고통의 구원자’로 표현했다. 로마에선 마약이 오락용으로 상용됐다. 이때까진 마약은 ‘신의 선물’이었다.

 유럽에 금욕적인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마약은 ‘악마의 선물’로 추락하게 됐다. 마약이 다시 일상용품으로 돌아온 건 17세기 영국의 토마스 신더햄이 아편이 함유된 ‘로더넘’이란 진통제를 개발하면서다. 로더넘은 19세기 서구에서 유행해 링컨 부인인 메리 여사도 애용자였을 정도다. 이 시대 소설 속 명탐정 셜록 홈즈도 아편을 즐겼다.

 마약이 글로벌 문제가 된 것은 19세기다. 화학 발달로 합성마약이 쏟아지고, 산업화에 지친 노동자들이 알코올과 함께 이를 탐닉하면서 마약중독이 사회적 병폐가 됐다. 마약을 돈벌이 도구로 여기면서 아편전쟁이 터져 세계사의 방향마저 바꿔놨다. 이후 20세기가 되면서 서구에선 마약과 조직범죄가 결합해 악의 뿌리가 됐다. 현재 마약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공적 1호가 된 배경에는 산업화와 국제화가 있다는 주장이다.

 21세기에 들어 마약은 테러와 함께 글로벌 위협의 하나가 됐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2000년 전 세계에 5000만 명 이상이 각종 마약을 정기적으로 쓰고 있다고 추산했다. 2003년 유엔은 국제 마약밀매 수익을 연 3216억 달러로 추산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한다. 마약이 범지구적 범죄가 되고 확산 저지에 국제 공조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저지가 어디 쉬울까? 미국 심리학자인 로널드 시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가 “마약은 기아·갈증·섹스 다음으로 인간의 네 번째 본능적 욕구”라고 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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