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아들 상도동서 일산 유치원까지 통학”…주택시장 마비에 곳곳서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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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ㆍ최현주기자] #서울 동작구에 사는 심모(33)씨는 요즘 매일 3살 된 아들을 경기도 고양시의 한 어린이집으로 등하교 시킨다.

올해 초 고양시에 분양 받아 둔 새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으로 근처 어린이집을 신청해 입학 허가를 받았는데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못한 때문이다.

심씨는 연초가 아니면 어린이집 입학이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일단 아이를 입학시켰다.

4·11 총선 전후로 집을 처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집이 팔리지 않아 아이는 벌써 두어 달 째 왕복 3시간 거리로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호가 내려도 살 사람 없어"

심씨는 “호가(부르는 값)를 내려도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며 “언제 이사를 할 수 있을지 몰라 어린이집을 다시 옮길 수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최모(55) 사장은 올해 초 직원(중개보조인) 2명을 모두 내보냈다. 임대료를 줄이기 위해 사무실 크기도 반으로 줄였다. 책상 4개 중 3개를 빼고, 티테이블은 2개에서 1개로 줄였다.

크고 작은 화분 마저도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해 모두 처분했다. 최 사장은 “지난해 초부터 지금까지 1년여 간 매매 거래를 딱 1건 중개했다”며 “전·월세 계약서를 쓰며 겨우 사무실 임대료를 벌었는데 요즘에는 이 마저도 줄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택 거래 시장이 마비되면서 주택시장은 물론 주택 연관산업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무엇보다 갈아타기(넓은 집이나 새 아파트로 이동하는 것)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살던 집을 팔아야 하는 사람의 고통이 크다. 값을 내려도 사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김모(66·여)씨의 경우 2년 전 분양 받은 남양주시 별내지구 아파트에 입주해야 하는데 살 던 집이 안팔려 넉 달째 비싼 잔금 연체 이자를 물고 있다. 잔금 1억8000여 만원에 대한 연체 이자가 월 130만원에 이른다.

김씨는 “고정 수익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며 “양쪽 집을 다 내놨는 데 양쪽 모두 팔릴 기미가 없어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고 토로했다. 주택 거래가 줄어든 것은 통계에서도 여실히 들어난다.

1분기 서울 아파트 거래건수 2006년 이래 가장 낮아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은 10만51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5만6582건)의 65% 수준에 머물렀다. 서울의 경우 3월 총 7646건이 거래돼 지난해 3월보다 38.2%나 줄었다.

주택 거래가 끊기면서 중개업계도 빈사 상태다. 먹거리가 줄자 중개업소 자리로 인기가 좋던 서울 강남권(서초·강남·송파구) 중개업소의 영업권리금(점포 거래 때 내는 일종의 자릿새)이 뚝 떨어졌다.

재건축 단지 내 상가 등의 중개업소 자리는 3~4년 전 권리금이 1억원을 호가했지만 지금은 2000만~3000만원 정도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내 상가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지난해 말부터는 학군 수요마저 줄면서 임대차 거래도 끊겼다”고 전했다.

실제 국토부에 따르면 올 1분기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량은 34만1453건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2.7% 줄었다. 특히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의 거래량(2만207건)은 지난해보다 10.2% 줄어 서울 평균 하락 폭(4%)보다 2배 이상 떨어졌다.

이삿짐센터·인테리어업체 등 연관산업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특히 주택 거래에 이어 전·월세 거래까지 줄면서 관련 업체 종사자들은 한숨만 토한다.

서울 서초구의 한 이삿짐업체 관계자는 “총선까지 겹치면서 올 들어 지금까지 장사를 거의 못 했다”며 “체감 일거리가 지난해에 비해 4분의 1도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택 거래량이나 인구이동 통계를 보면 이사 수요가 줄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읍·면·동 경계를 넘어 이사를 한 사람은 전국 71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3월보다 10만8000명(13.1%)이나 감소했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인테리어 업체 장모 사장은 “주택 거래도 줄었지만 전반적으로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이사를 하더라도 부분적으로 수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장 사장이 입주한 단지의 경우 1300가구에 이르지만 올 들어 인테리어를 새로 한 집은 1300가구 중 3가구라고 전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부가 서울 강남 3구의 투기지역 해제 등을 포함해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을 고민 중이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연구위원은 “유럽 재정 위기 등으로 국내 경기가 여전히 어두워 전반적인 주택 경기도 당분간 침체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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