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페루 대통령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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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희권
주 페루 대사

2011년 6월 페루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성향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가 당선하자 페루 증권시장이 20년래 최대로 폭락했다. 우말라 정권이 베네수엘라 차베스식 급진좌파 모델을 따를 것이란 우려가 바로 시장의 불안감으로 나타난 것이다. 페루 정부는 1960~70년대 국가주의적 수입 대체산업 육성을 경제정책으로 채택해 저소득의 굴레에 떨어진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시장개방과 외국인 투자환경 개선 등 시장친화적 정책을 추진해 2000년대 이후 연평균 7.2%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이러한 유례없는 성장에 힘입어 지난 30년간 제자리걸음을 하던 1인당 국민소득도 최근 8년간 50% 이상 증가했다. 경제가 겨우 성장궤도에 진입한 시점에 또다시 국유화, 사회정의를 위한 재분배 및 정부 통제를 강조하는 좌파 정권이 집권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만도 했다.

 그러나 집권 10개월째에 접어든 현재 우말라 정부는 기존 정부의 시장경제 기조를 대부분 계승하는 실용주의적 노선을 채택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경제성장을 위해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자유무역을 확대해 나가되 빈곤층에 교육, 의료, 기초생활 등에서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부여하는 ‘사회통합’ 기치를 내걸었다. 성장이 모든 사회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장 없는 사회정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 인식을 국정에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우말라 대통령의 균형 성장과 분배 정책에 대한 국내외의 신뢰를 반영하듯이 지난 4월 초 리마 증권지수가 약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페루는 올해에 중남미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 5.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성적 부패와 빈부격차 해소라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당선된 우말라 대통령이 일단 첫 단추를 잘 낀 셈이다.

 우말라 대통령은 2004년에 주한 페루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하면서 4개월간 한국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2005년 귀국 직후부터 국내 정치활동을 개시했고, 2006년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에 나섰다. 서울은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입문하기 전 마지막 공직이었던 만큼 무관 우말라가 이곳에서 자신의 정치적 청사진을 그려보며 향후 정치 행보를 계획했을 것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당시 42세의 젊은 군인이었던 우말라에게 한국은 어떠한 인상을 남겼을까? 분명한 것은 우말라 대통령이 한국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자국의 경제발전 모델로서 한국과의 협력을 특별히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한국인의 절친한 친구인 우말라 대통령은 올해 5월 10~12일 국빈 방한할 예정이다.

 우말라 대통령의 방한은 ‘금의환향’이다. 그러나 지난 8년간 우말라 대통령의 신분만 변한 것이 아니다. 한국과 페루 간 양국 관계도 놀랄 만큼의 양적·질적 성장을 보였다. 이번 방한은 지난 5년간에 이뤄진 무려 네 번째의 양국 정상 간 상호 방문이다. 지난 8년간 양국 간 통상규모는 무려 6배 이상 증가했으며, 지난해 8월 발효한 한·페루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로 양국 간 교역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페루는 동(2위), 아연(3위), 연(5위), 몰리브덴(7위) 등의 광물자원 부존 규모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자원부국으로, 최근 우리 자원·에너지 기업의 페루 투자 진출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한반도의 여섯 배가 넘는 영토를 가진 페루의 풍부한 자원과 우리의 자본 및 기술력이 결합하면서 한·페루 간 상호 보완적 실질협력관계는 가일층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감안해 양국 정부는 이번 우말라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중남미 국가 중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할 예정이다.

박희권 주 페루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