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번가의 기적〉외 주말의 TV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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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34번가의 기적' -밤 10시 40분

산타를, 천사를, 사랑을 믿으세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작은 기적을 기대하고픈 때가 성탄절. 하지만 정말 기적이 일어난다 한들 영악한 현대인이 그것을 인정할까.

1947년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한 동명의 할리우드 고전을 94년에 리메이크한 '34번가의 기적' (23일 밤 10시40분 KBS2 ★★☆) 이 그런 경우다.

백화점 간부에게 산타는 성탄절 판촉용 임시고용인일 따름. 하지만 어린 딸은 엄마의 백화점에 산타로 고용된 볼품없는 할아버지를 진짜 산타라고 믿기 시작한다. 이 할아버지가 진짜 산타인지 여부는 급기야 법정문제로까지 비화한다.

감독은 레스 메이필드지만, 각색.제작을 맡은 '가족물 전문가' 존 휴즈의 영향력이 큰 영화다. 대배우 리처드 아텐버러가 산타로 출연한다. 94년작.

MBC '나홀로 집에' 1.2.3 -밤 11시 5분

악당 뺨치는 악동

1990년 나온 '나홀로 집에1' (23일 밤 11시5분 ★★☆) 은 성탄절 영화의 통념을 깨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집에 남은 개구장이 아역 주인공의 활약을 어지간한 성인용 액션물 못지 않게 그려 대히트했다.

전작의 인기에 힘입어 2년 뒤 만들어진 '나홀로 집에2' (24일 밤 11시30분 ★★) 는 무대만 뉴욕으로 바뀌었을 뿐 전작의 감독 크리스 컬럼버스와 주연 매컬리 컬킨이 한층 더한 악동짓으로 악당들을 괴롭힌다.

97년의 '나홀로 집에3' (25일 오후 5시 ★★☆) 은 훌쩍 커버린 매컬리 컬킨 대신 알렉스 긴즈를 주연으로 기용했고, 악당 역시 전작들의 좀도둑에서 국제적인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대체했다.

세 편 모두 존 휴즈가 제작.각색을 주도했다. 생각 있는 부모라면 주인공이 아역이라고, 이 시리즈를 바람직한 아동물로 오해하지는 않을 터.

'베를린 천사의 시' EBS 23일 밤 9시

같은 곡이라도 가수가 다르면 노래의 맛이 달라진다. 원작과 리메이크작을 비교하는 재미도 그렇다.

다른 나라의 원작 영화가 할리우드로 건너가 리메이크되는 경우가 잦다.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심각하게 물었던 뤽 베송 감독의 '니키타' 가 미국으로 건너가 세련된 액션 영화 '니나' 로 태어났는가하면, 프랑스가 배경인 제라르 드파르디외 주연의 '마틴 기어의 귀향' 은 리처드 기어와 조디 포스터를 주인공으로 '서머스 비' 로 리메이크돼 또다른 맛을 안겨주기도 했다.

성탄 특집으로 방영하는 '베를린 천사의 시' (EBS 23일 밤 9시 ★★★☆) 와 '시티 오브 엔젤' (KBS2 밤 11시 ★★☆) 도 그런 맥락이다. 독일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 (1987년) 는 제목처럼 천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겁의 세월동안 인간을 바라보던 천사 데니얼은 커피를 마시는 기분과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느낌, 혹은 외롭다는 감정을 느끼고 싶어한다. 그러다 공중곡예사 매리온을 사랑하게 돼 천사의 특권을 버리고 인간이 된다.

인간의 생동감 넘치는 삶의 바닥에 깔려있는 고통의 의미를 반추하는 철학적인 영화다.

이에 반해 '베를린 천사의 시' 를 할리우드식으로 각색한 '시티 오브 엔젤' 은 로맨스 영화에 가깝다. 존재론적 의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니컬러스 케이지와 맥 라이언을 내세워 애틋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천사 세스는 환자를 살리려고 몸부림치는 여의사 매기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매기의 주위를 맴돌던 세스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천사의 삶을 포기하고 인간이 된다. 두 사람은 행복한 하룻밤을 보내지만 매기가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세스는 사랑을 잃은 채 인간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EBS 엘머 갠트리-오후 2시

세속화한 목회자

성탄전후에 방송하는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엘머 갠트리' (24일 오후 2시 ★★★☆) 는 세속화하는 종교의 폐단에 비판적 시선을 들이댄다.

1920년대 미국 중서부를 무대로 복음을 전하는 개신교 전도사의 세일즈맨같은 행각을 그려 1960년 개봉 당시에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작품. 주인공 버트 랭캐스터의 열연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리처드 브룩스 감독.

KBS1 '목사의 아내' 24일 밤 11시25분 KBS1

'목사의 아내' (24일 밤 11시25분 KBS1 ★★☆)에서도 교회일에 지쳐 '도와주십사' 기도를 올렸던 가난한 동네 목사는 정작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수상쩍은 눈길을 보낸다.
천사를 신뢰하는 아내의 모습에 오히려 둘의 관계를 의심할 정도. 96년작인 이 영화 역시 47년도 고전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원작의 주연이 캐리 그랜트.로레타 영 등 백인이었던 데 비해 감독 페니 마샬은 흑인 스타 덴젤 워싱턴.휘트니 휴스턴을 기용한 점이 이채롭다.

두 영화 모두 진정한 기적은 산타나 천사의 출현이 아니라 일에 쫓겨 등한시하던 가족관계의 회복이라고 역설한다. 40년대에 비해 요즘 관객 취향에는 다소 단순한 이야기지만,가족물로는 무난하다.

약간 다른 소재이지만, 아프리카 왕족으로 분한 에디 머피가 뉴욕의 보통 아가씨를 배우자로 맞기 위해 분투를 벌이는 '에디 머피의 구혼작전' (24일 밤 12시50분 KBS2) 역시 자잘한 재미로 볼 만하다.

88년작. 존 랜디스 감독. (별점 출처 : 레너드 마틴의 영화.비디오 가이드 2000.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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