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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진보당, 부정선거 수사 의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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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를 통해 이번 4·11 총선에서 비례대표 6석을 포함해 13석의 제3당으로 등장했다. 한국 진보정치 역사에서 가장 큰 몸집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야권연대로 의회 영향력이 매우 커졌다. 야권 후보단일화를 이루면 12월 대선과 이후 정국에서도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렇게 중요한 정당이 창당 5개월 만에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비례대표 경선에서 대규모 선거부정이 저질러진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미 당은 총선과정에서 공동대표였던 이정희 후보의 보좌관들이 여론조사 조작을 저질러 이 후보가 사퇴한 바 있다.

 당 진상조사위는 비례대표 경선은 선거관리 능력 부실에 의한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고 규정했다. 지난 3월 14~18일 경선에는 당원 4만1000여 명이 참여했다. 85%는 온라인, 15%는 200여 투표소에서 투표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온라인 투표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논란이 되는 소스코드 열람이 이뤄졌다. 이는 현장투표로 치면 사전 투표함 개봉이나 마찬가지다. 개표에서도 후보자별로 1~24표 오차가 나왔다. 투표소 7곳에서는 투표인과 투표함 내 투표용지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았다.

 경선 결과 당권파 후보가 1~3위 순위에 배치됐다. 부정선거 문제를 제기한 비(非)당권파는 선거부정으로 자파 후보들이 뒤로 밀렸다며 1~3위 후보의 사퇴와 지도부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정희 전 대표를 비롯한 당권파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4·11 총선 전 통합진보당은 5석 내외 비례대표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됐다. 따라서 후보 순위를 정하는 경선은 사실상 국회의원 선거였다. 입법부 헌법기관을 뽑는 선거에서 이런 부정과 부실이 일어난 것이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돈봉투를 살포했던 한나라당 대표 경선은 국회의원 선거가 아니라 당내 경선이었다. 그런데도 진보당을 포함한 야권은 철저한 검찰 수사와 국회의장 퇴진을 요구했다. 수사가 진행돼 사법처리가 이뤄졌고 박 의장은 사퇴했다.

 조사위는 부정선거지만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관리미숙이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당기위 회부를 촉구했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으로 봐서 이런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 고의성 여부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진보당이 위기를 딛고 새로 태어나려면 스스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당권파나 시민단체의 고발로 검찰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 보수·진보를 떠나 도덕성은 정치세력의 생명이다. 이를 상실하면 북한·경제·복지 등에서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이번 사건은 한 지역위원장의 폭로로 시작됐다. 그러나 그 전에도 이미 당내 적잖은 이가 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을 알고도 쉬쉬한 것이다. 보수세력과 여당의 잘못은 양파껍질처럼 벗겨내면서 정작 자신들의 것은 화투패처럼 숨기고 있다. ‘통합모순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