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만한 폰 적고 쓸 만한 요금제 없어 소비자 ‘깜깜이’ 만든 블랙리스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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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 자급제가 시작된 1일, KT는 유심(USIM)을 구입하면 약정기간에 얽매일 필요 없이 선불 충전을 한 만큼 이동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올레 심플’ 서비스를 선보였다. [뉴시스]

대형 할인점이나 가전대리점, 편의점 등 어느 곳에서나 휴대전화를 구입해 쓸 수 있는 ‘단말기 자급제’(블랙리스트제)가 1일 시작됐다. 대리점에서 할인을 받고 휴대전화를 사면서 1~3년 약정에 묶여야 했던 관행에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시행 첫날 다른 데서 산 휴대전화를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들고 와 개통해 달라는 고객은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 자급제에 대해 묻는 발길조차 뜸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 매장을 찾은 고객 가운데 자급제에 대한 문의는 서너 건에 불과했다. 고객들은 그나마 요금제 설명을 들으면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아섰다. 제도는 시작됐지만 ‘자급폰’을 위한 요금제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로 SK텔레콤 대리점을 찾은 김진현(42·회사원)씨는 “목돈을 들여 기기를 따로 구입해도 기기 할인 혜택이 포함된 기존의 비싼 요금제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 대리점 직원은 중고 전화 가격을 묻는 고객에게 “스마트폰의 경우 쓸 만한 중고폰은 10만원이 넘는다”며 “중고폰을 개통할 때 비싼 요금제를 택해야 하는 점까지 고려하면 차라리 기기값을 대폭 깎아주는 롱텀에볼루션(LTE·4세대)폰을 새로 사는 편이 싸다”고 설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이날 자급폰 전용 요금제 도입 계획을 밝혔다. 방통위는 자료를 내고 “이통사와 상관없이 자급폰도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도록 통신사들과 협의 중”이라며 “이달 안에 관련 요금제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개통하지 않은, 이른바 ‘공단말기’ 구입 방법도 개선되지 않았다.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아직 공단말기 공급 일정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자급제가 시행됐다고 단말기 공급처를 확대한 것은 없다”며 “전처럼 통신사 대리점이나 삼성전자 직영 판매점을 중심으로 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급폰을 사려고 대형마트나 편의점에 가봤자 지금은 헛걸음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방통위 홍진배 통신이용제도과장은 “제조사·마트·온라인쇼핑몰 등에서 공단말기 판매를 준비 중이지만 본격 출시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그래서 자급제 초기에 해외에서 개인적으로 들여온 단말기나 중고 단말기 위주로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단말기 자급제라도 LTE폰을 구입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국내 이통사별로 LTE 주파수가 달라 중고폰의 경우 통신사를 옮기면 쓸 수가 없다. 미국에서 사온 LTE폰도 주파수가 달라 국내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따로 휴대전화를 살 때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도난·분실된 단말기가 아닌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온라인이나 타인에게 구입한 중고폰은 국립전파연구원(KAIT)의 단말기식별번호(IMEI) 조회 서비스(checkimei.or.kr)로 체크해 봐야 한다. 2012년 5월 이후 모델은 IMEI로, 이전 모델은 모델명과 일련번호로 조회할 수 있다.

박태희 기자

블랙리스트 제도 도난·분실처럼 문제가 있어 ‘블랙리스트’에 오른 단말기가 아니면 다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단말기 자급제의 별칭이다. 단말기에 문제가 있는지는 이동전화 단말기 제조사가 출고할 때 붙이는 국제 고유 식별번호(International Mobile Equipment Identity)로 확인한다. IMEI는 휴대전화 뒷면이나 배터리를 넣는 부분, 또는 내부 프로그램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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