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과 무능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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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대통령의 측근에 있으면서 정부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던 여당의 한 고위급 인물이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의 당정 쇄신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한다. 아마 그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는 얼마 전에도 후배 정치인의 공격을 받았을 때 "대통령과 국가를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는 내 충정을 믿어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의 선택을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그가 '충정'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얼핏 들으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만큼 불필요하기도 하다. 무릇 정치인이라면, 그것도 여당 소속의 인물이라면 대통령과 국가에 대한 충정은 대부분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충정만 있다고 해서 정치인의 자격이 갖추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의사는 한 생명을 구하지만 정치인은 수백만을 살리거나 죽이는 일을 한다. 예컨대 건축법의 조항 하나만 바뀌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지 않는가? 그래서 정치는 기술(technic)을 뛰어넘은 예술(art)이다. 그러나 충정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우리나라의 정치는 기술보다도 한 단계 낮은 신념과 도덕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에선 도덕성이라는 잣대가 최우선시되고 있으며, 품성만 바르면 능력 여부와는 관계없이 정치인의 자격이 주어질 수 있다고들 믿는다. 출마자들만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부도덕과 부패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였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역사상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도덕성이라는 1차 관문에서 나가떨어지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결국 관리의 가장 초보적인 기준에도 미달하는 자들이 나라를 이끌어온 셈이다. 그랬으니 조선 후기 개혁의 실패를 가슴에 묻고 유배지에서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며 여생을 보낸 정약용도 정치 개혁을 부패 척결의 수준에서만 바라본 것은 당연하다.

그가 유배되어 있던 19세기 초반은 이른바 세도정치가 판치던 시대다. 말이 좋아 세도정치지 사실은 정치 자체가 실종된 황폐한 시대다. 그 한복판에서 저술한〈목민심서〉에서 정약용은 암행어사와 지방 수령을 지냈던 자신의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사목 활동, 즉 선정(善政)에 대해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가 말하는 선정을 위한 조건은 관리의 능력과 역량이 아니라 품성과 도덕에 그친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비용을 절약하는 데 있고, 비용을 절약하는 근본은 검소한 데 있다. 검소한 뒤에 청렴하고, 청렴한 뒤에 자애로울 것이니, 검소야말로 목민하는 데 가장 먼저 힘써야 하는 것이다." "청렴은 수령의 본무로, 모든 선의 근원이요 모든 덕의 뿌리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노릇을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청렴하지 않고서는 수령 노릇을 할 수 없다. 이것만큼 요즘 우리에게 실감나는 말이 또 있을까? 그러나 우리의 현실도 그렇듯이 정약용의 시대에도 현실은 정반대였다. 당시 관직에 진출하여 출세하는 길은 가진 재산을 바치고 어떻게든 세도 가문과 인연을 맺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관직에 올랐으니 백성들에게서 본전을 뽑으려 들 것은 당연한 일, 따라서 애초부터 청렴한 관리의 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정약용이 주장하는 청렴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 "전관(前官)에게 흠이 있으면 덮어주어 나타나지 않도록 하고, 전관이 죄가 있으면 도와서 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요즘 같으면 법조계에 만연한 '전관 예우'를 생각케 하는 말이지만 그의 시대에는 그런 정도까지는 '예의'에 속했던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현인의 자격이 충분한 정약용도 민주주의의 사상을 가지지는 못했으므로 관(官)이 민(民)을 지배한다는 것을 당연시했다. 우선 제목의 목민(牧民)이라는 말 자체가 백성을 계도한다는 뜻이다. 시민사회의 전통이 없는 우리 역사에서는 관리들이 백성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만큼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역사에서 관리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해준 경험은 거의 없었다. 관리가 지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과거가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관리를 최고로 친다. 오죽하면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부모들이 자식에게 최고로 바라는 것은 애오라지 관직일까?(조선시대에는 과거 급제, 오늘날에는 고시 합격!)

뭐든지 고이면 썩게 마련이다. 관직 혹은 공직은 평생 직업적 안정성이 보장되는 직업이므로 본래적으로 다른 직종보다 부패하기 쉽다. 게다가 권력마저 지녔으니 말할 것도 없다. 정약용은 관리의 청렴을 강조했으나 조선 사회의 체제상 청렴한 관리란 존재할 수 없었다. 결국 <목민심서>에서 그가 주장한 개혁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던 셈이다.

사실 한 나라의 정치를 담당하는 자라면 가장 중요한 자질이 유능함이어야 할 것이다. 청렴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자질일 뿐 제1의 자질은 아니다. 그러나 정약용의 시대에도,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청렴함이 유능함보다 더 강조되는 게 현실이다.

앞에 말한 여당의 최고위원이 정작으로 말했어야 할 퇴임의 변은 '대통령과 국가에 대한 충정' 운운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의 능력 부족을 절감한다'는 것이었어야 했다(물론 거기에도 최소한 그가 부패한 정치인은 아니었다는 게 전제가 되어야겠지만). "남이 나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나의 무능을 근심하라." <논어>의 이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은 많다.

남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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