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체육을 살리자] 7. 스포츠 클럽의 천국 독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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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후 6시30분 독일 쾰른시 서부에 위치한 41지역.

이미 해가 져 어두컴컴한 숲 사이로 하얀 불빛이 운동장을 비추고 있다. 초등생부터 고교생까지 60여명의 청소년들이 여섯개의 골대를 중심으로 네개 팀으로 나누어 축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간간이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1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 전문 스포츠 클럽 '슈바르츠 바이스' 의 회원이다.

볼 트래핑.헤딩.드리블 등 다양한 훈련을 소화하내는 모습에서 '전차 군단' 독일 축구의 미래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3백명을 회원으로 둔 슈바르츠 바이스는 독일 최고 수준의 클럽이 아니다. 그저 도시 외곽에 자리잡은 평범한 축구 클럽에 불과하다.

이 클럽에서 최고 기량을 갖춘 성인 A팀은 독일 축구리그 분데스리가 7부 리그에 속해 있는 정도다.

독일은 '스포츠 클럽의 천국' 이다. 스포츠 클럽수는 8만6천여개며 전체 회원수도 2천7백여만명에 이른다.

청소년의 스포츠 클럽 가입률은 57%. 정규 체육 수업은 주당 세시간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은 방과후와 주말을 이용, 너도나도 클럽에서 마음껏 스포츠를 즐긴다.

어떻게 이토록 많은 클럽이 있을 수 있는가. 스포츠 클럽이 독일에서 지역사회의 한부분으로 뿌리내리며 한세기 이상 지속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 광고유치.수익사업〓독일의 스포츠 클럽은 철저히 비영리로 운영된다. 회원들이 내는 가입비.연회비는 아주 싸다. 큰 부담없이 운동을 즐길 수 있기에 수많은 학생들이 클럽을 찾는 것이다.

슈바르츠 바이스 클럽 가입비는 15마르크(약 8천2백원), 연회비는 1백20마르크(약 6만6천원)다. 회비도 적고 국가 지원도 넉넉지 않지만 그들만의 경영방식으로 클럽을 꾸려나간다.

우선 광고 유치. 축구장 주변은 50여개의 광고판들로 둘러싸여 있다. 은행.의약품 등을 알리는 광고판은 크기에 따라 연 3백~6백마르크의 광고비를 받는다. 광고수익금은 이 클럽 1년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이다.

페스티벌이나 바자 등을 여는 것도 재정유지에 도움을 준다. 하키 클럽은 지난달 클럽 소유 하키구장에서 유명 가수의 콘서트를 개최해 4천마르크(약 2백20만원)의 수익금을 벌여들였다.

◇ 정부.학교시설 무료 사용〓지난달 28일 오후 7시 쾰른시 남서쪽에 위치한 엘리자베트 폰 투링겐 고등학교.

지상 3층인 체육관 지하에서 우렁찬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한국인 김홍남(42)씨가 운영하는 태권도 클럽이 이곳에 있다.

따로 태권 도장이 없는 김씨는 학교 체육관을 이용해 독일인들에게 태권도를 보급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쾰른시에는 3백개의 초.중.고교가 있으며 이중 2백70개 학교에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체육관이 있다.

태권도 클럽 한달 회원비는 30마르크(약 1만6천원). 이 정도의 돈만 받고도 클럽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학교 체육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클럽 회원 중 청소년 비율이 20% 이상이면 학교 체육관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슈바르츠 바이스 축구 클럽의 운동장도 본래 소유주는 쾰른시다. 스포츠 클럽의 운영자격을 갖게 되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적정 토지를 무상으로 영구 임대받을 수 있다.

임대료 등이 없으므로 스포츠 클럽은 당연히 시설 유지에만 돈을 쓰는 '저비용' 운영을 할 수 있다.

◇ 보험 가입〓국내 학교 체육시설을 외부에 개방하지 않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사고가 났을 경우 학교장 등이 그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클럽들이 사고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독일 체육연맹 산하에는 상해보험과 관련된 일을 하는 '스포츠 힐테' 라는 부서가 따로 있다.

이 부서는 보험회사와 계약을 하고 있으며 클럽들은 정부 당국에 클럽 등록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상해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클럽 회원들은 회원비 중 일부(8~12마르크)를 보험금으로 지불하고 운동하다 다칠 경우 치료비 전액을 보상받는다.

◇ 계층.인종간 화합〓 "출신 때문에 참여할 수 없는 클럽은 없다."

독일 정부가 생활체육 홍보를 위해 내건 구호다. 독일은 최근 동구 유럽인들의 급격한 유입으로 인종간.계층간 갈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을 스포츠 클럽이 하고 있다. 몸과 몸을 부딪치며 스포츠를 즐기면서 사회 통합의 기초를 마련하고 있다.

쾰른시 생활체육 담당자 헤르베르트 쇼른은 "통독 이후 민족화합 차원에서 스포츠 클럽의 활성화는 더욱 필요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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