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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관리형 유학 다녀온 이태진군

중앙일보

입력

고용희씨와 이태진군이 이군의 필리핀 관리형 유학 동안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기유학을 가기에 초등학교 4학년은 너무 이르고 6학년은 중학교 진학 문제 때문에 어렵지 않나요?”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조기유학 적기로 초등 5학년 때를 꼽는다. 국내 복귀 후 적응기간을 가진 뒤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 4~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너무 이른가’, ‘너무 늦었나’라는 고민을 한다. 그러나 자녀가 초등 4학년 때 필리핀으로 9개월 과정 관리형 유학을 보냈던 고용희(42?여?서울 반포동)씨는 “학년에 맞춰 유학 목적을 분명히 하면 무리 없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경험담을 말했다.

7줄이던 에세이 분량, A4 한 장으로 늘어

 고씨의 아들 이태진(서울 원촌초 5)군은 6살 때 아버지의 출장을 따라 6개월 동안 미국에서 생활했다. 고씨는 ?어느 정도 영어를 익힐 수 있겠구나?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군은 치를 떨 정도로 영어를 싫어하게 됐다. 기초가 없는 상태여서 외국인 친구들과 간단한 대화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고 또래 미국 친구들과도 사귀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이군의 영어혐오증은 계속됐다. 고씨는 “아이가 영어를 하도 싫어하니까 영어 공부는 거의 시키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군은 간단한 영어어휘 몇 개정도만 아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초등 3학년부터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진행하는 영어 수업도 따라가기에 벅찼다.

 그러다 지난해 초 우연히 필리핀 관리형 유학 설명회에 참석했다. “기숙 관리, 말하기·쓰기·읽기·듣기와 문법까지 영역별 1대 1 수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철저한 1대 1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씨는 “한국에선 1대 1 수업을 받아도 하루 1~2시간 정도 밖에 안 된다”며 “필리핀에선 24시간 관리를 받으면서 1대 1로 집중지도를 받을 수 있으니까 단기간에 기초실력을 쌓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군도 “주변 친구들과 비교해 내 실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영어를 싫어한다고 계속 멀리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고 필리핀 유학을 결심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이군에게 필리핀 생활을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첫 2달 동안은 영어로 간단한 말 한 마디도 못했다”며 “힘들었지만 더 이상 도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떠올렸다. 변화는 필리핀에서 유학을 시작한지 3달이 지난 시점부터 시작됐다. 말 한 마디 못하던 이군이 고씨와의 화상채팅에서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군이 태어나 처음 써본 영어에세이를 전달 받아 본 가족들은 뛸 뜻이 기뻤다. 고씨는 “철자도 틀리고, 띄어쓰기도 틀렸지만 영어를 싫어하던 아이가 단 몇 줄이라도 영어로 글을 썼다는 사실에 눈물까지 흘렸다”고 회상했다. 이후 이군의 실력은 빠르게 늘었다. 유학 7개월 째는 영어토론에 참가해 자기 의견을 남들 앞에서 영어로 말할 만큼 영어에 자신감이 붙었다. 7줄에 불과했던 영어 에세이 분량도 A4지 한 쪽을 다 채울 정도로 늘었다.

 고씨와 이군은 “1대 1 지도가 자리를 잡은 필리핀이었기에 이런 성과가 가능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군의 실력을 진단했던 필리핀 현지 강사들은 일부 과목만을 제외하고 모든 수업을 1대 1로 진행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문법·어휘·발음은 물론 읽기와 쓰기 모두 기초부터 철저히 다져갔다. 고씨는 “필리핀 현지 강사들의 학생 개인 맞춤형 강의가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필리핀 강사들의 공개수업과 동영상을 봤는데, 아이가 아무리 반응이 없어도 계속 영어로 물어보고 답을 유도해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더라”고 평가했다. 이군도 “그런 필리핀 선생님들 덕분에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지 사립학교 과정 이수로 학력 인증

 박민석(가명·49·서울 오금동)씨는 게임에만 빠져있던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 영어실력을 기르고 공부습관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필리핀 관리형 유학을 선택했다. 박씨는 “많은 학부모들이 6학년 때 조기유학이 어렵지 않냐고 묻는데, 중학교 진학과 관련해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몇 가지 사실 만 미리 알고 대비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6학년 땐 일 년 중 60여 일 이상을 결석하면 6학년 과정으로 복귀하는 것이 어렵다. 박씨는 “4~5학년은 학교장 재량으로 해당 학년으로 복귀가 가능한데 6학년은 어렵다는 대답을 많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필리핀 유학과정은 현지 사립학교 과정을 이수하기 때문에 6학년 학력 인증은 된다. 박씨는 자녀가 필리핀에서 학력인증을 받고 그대로 6학년을 졸업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국내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선 지원학교를 선택하고 해당 학교에서 출제하는 입학시험을 치르면 된다. 대부분 학교들이 국어·영어·수학·과학 과목의 기본학업능력을 시험 본다. 간혹 사회과목까지 시험을 보는 학교도 있다. “학교마다 차이가 조금씩 있긴 하지만, 시험 난도는 초등과정의 기본 교과 지식을 묻는 수준이었어요. 아이가 큰 어려움 없이 시험을 치르고 원하는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이어 “이렇게 6학년 때 유학으로 학력인증을 받고 졸업하는 경우는 미인정재취학 학생으로 분류돼 현재 중학교 배정방법과는 다르게 원하는 중학교를 지원해 갈 수 있다”고 귀띔했다. “중학교에 진학 후엔 해외에서 영어공부를 할 기회가 없어요. 6학년 때가 마지막 기회죠. 아이가 유학 후 영어에 자신감도 붙고, 매일 4~5시간 끈기 있게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습관도 길러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사진="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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