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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박정희와 친구 … 5·16 땐 맞섰던 ‘호랑이 장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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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한 이한림 건설부 장관, 박정희 대통령 부부, 정주영 현대건설 사장(왼쪽부터). [중앙포토]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6개월쯤 뒤인 1961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마크 홉킨스 호텔.

한 40대 남성이 귀빈실로 들어서자 거실에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그를 맞이했다. 박 의장이 손을 내밀자 그 남성은 악수를 뿌리치고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야, 그래 이제 속이 시원하냐!”

 그는 이한림(사진) 전 1군 사령관이었다. 5·16에 반발하다 체포돼 미국으로 추방된 상태였다.

 그가 29일 별세했다. 91세. 고인은 60~80년대 건설부 장관, 관광공사 사장과 터키·호주 대사를 지냈다. 5·16 쿠데타 당시 박정희와 맞섰던 ‘호랑이 장군’으로 더 유명하다.

 만주군관학교, 일본육사 동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애증관계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고인은 1948년 남로당 사건에 연루돼 군복을 벗은 뒤 혼자 지내던 박 전 대통령을 찾아가 “다시 시작하라”고 위로하며 밤새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 정도로 둘은 젊은 시절 각별한 사이였다.

 하지만 5·16 쿠데타로 둘의 사이는 급속히 냉각됐다. 고인은 쿠데타 소식을 접한 직후 1군단장 임부택 소장에게 진압준비를 명령했다.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는 이유였다. 하지만 ‘국군끼리 충돌과 출혈은 하지 말라’는 윤보선 대통령의 친서를 받고 명령을 접었다. 북한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진압을 주저하게 하는 데 영향을 줬다.

 고인은 이후 반(反)혁명분자로 몰려 강제 예편 당한 뒤 3개월 동안 헌병사령부와 교도소를 전전하다 미국으로 추방됐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바바라 분교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 정일권 전 국무총리의 권고로 박 전 대통령과 극적인 화해를 했다. 그 뒤 69~71년 건설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굵직한 국책사업을 진두지휘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는 박 전 대통령 내외와 나란히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고인의 앙금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어색한 관계가 한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79년 박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날 바로 대사직을 내놓았다. 5·16 쿠데타 당시 고인의 전속부관이었던 박준병 전민정·민자당 사무총장은 “절친한 친구였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나 분노를 가지고 있었지만, 서거 소식을 듣고 침통해하며 아무 말없이 대사직을 내놓았다. 그게 그가 살아온 방식”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이후 분당 서현동 자택에 칩거하며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 왔다. 저서로는 94년 발간된 회고록 형식의 『세기의 격랑』이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이승훈(경수고속도로 대표)씨와 사위 김성필(NH글로벌 대표)·이한은(개인사업)·이의평(신영와코루 대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5월 2일 오전 7시. 02-3010-2265.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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