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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운동’ 두 시간 왕따가 사라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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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초등학교(서울 노원구) 2학년 4반 박균영군이 지난 23일 오후 방과 후 배드민턴 체육프로그램에서 스매싱을 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

어떤 아이가 행복할까. 어떤 학교에 왕따와 학교폭력이 적을까. ‘운동’에 답이 있다. 신체 발달은 물론 자신감·사회성·책임감 등을 키워 정서적으로 아이를 살찌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청소년의 신체활동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2008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12~18세 청소년 중 평소보다 조금 힘들거나 숨이 약간 가쁜 신체활동을 주 5일 이상, 1회 30분 하는 학생은 10명 중 1명도 안 된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운동효과에 대해 알아봤다.

‘일진’ 지훈이도 운동하며 친구들과 친해져

지난해 선부초등학교(경기도 안산) 6학년 7반이었던 김지훈(가명·12)군은 일명 일진이었다. 6학년 중 덩치가 가장 컸다. 김군은 기분이 나쁘면 친구에게 화를 내고 윽박질렀다. 아이들은 김군을 피했다.

 하지만 1학기가 끝날 무렵 김군은 180도 달라졌다. 체육 전담 이승배 교사(올해 3월 안산 화정초등학교로 전근)가 축구를 이용한 새로운 체육수업 모델을 도입한 결과다.

 기존 축구는 운동신경과 체격이 좋은 애들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이 교사가 개발한 체육수업은 다르다. 이 교사는 “운동의 성격·규칙을 이해시키고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역할을 부여해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김군은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짜며 소통했다. 팀플레이를 했고, 하이파이브하며 응원했다. 패한 팀에는 악수를 건네며 격려를 잊지 않았다.

 이승배 교사는 “학교 체육활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는 씨앗”이라고 말했다. 경인교대 체육교육학과 유생열 교수는 “재미가 녹아 있는 적절한 운동은 사회성을 키워 왕따·학교폭력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농구·축구·벨리댄스 … 학생 170명이 참여

지난 23일 오후 3시 서울 노원구 중계로 수암초등학교. 학년과 반이 다른 학생 30여 명이 실내체육관에 모였다. 정규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 체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이다.

 이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방과 후 수업 중 체육프로그램의 비중이 몇 배 많다. 농구·축구·티볼·댄스스포츠·벨리댄스 등 17개 강좌가 있다. 0교시에도 체육활동이 있다. 박장희 교감은 “전교생 800여 명 중 170여 명이 방과 후 체육수업에 참여한다. 두 가지 이상 하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은 실내체육관 양쪽에서 배드민턴과 음악줄넘기 수업이 진행됐다. 키가 큰 5학년 7반 한지영양은 마지막 수업이 체육이었는데도 두 시간짜리 배드민턴을 또 배운다. 태권소녀 5학년 3반 김나인양은 발을 다쳐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 “다리만 여덟 번 다쳐봐서 괜찮아요. 집중력을 키우는 데 운동만 한 게 없어요.” 배드민턴반 막내인 2학년 4반 박균영군. 체육교사가 던져준 셔틀콕 3개를 라켓으로 힘껏 쳐 모두 네트 멀리 넘겼다.

형과 누나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박군이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느새 셔틀콕이 체육관에 쌓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학년과 저학년 학생 몇 명이 나가 바구니에 담았다.

 2시간 운동이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공부보다 재미있어요.” 5학년 7반 이예원양이 거든다. “우리 학교는 다 친구예요. 왕따도 없어요.” 이 학교 임태상 체육부장은 “방과 후 체육활동을 늘리니 학교에 빨리 오고 싶다는 아이가 늘고 다툼도 줄었다”고 말했다.

운동하는 아이들 행복감 20% 증가

우리 아이들은 행복지수가 낮다. 2008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3명이 많은 스트레스를 느꼈다. 우울증 경험은 12.2%, 자살을 생각해 봤다는 학생도 14.2%에 달한다.

 해결법은 없을까. 숭실대 생활체육학과 박주영 교수는 “지속적인 운동은 사회성은 물론 체력과 운동능력이 향상돼 자신감·성취감을 높인다”고 말했다. 광주교대 체육교육과 김인수 교수는 “운동은 자아실현에 도움이 돼 학생 우울증과 자살 예방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운동 효과는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한국청소년건강재단과 대한비만학회는 운동을 꾸준히 한 학생의 신체·정신건강을 조사했다. 지난해 서울·인천 4개 중학교에 재학 중인 남녀 학생 31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정규 체육시간 이외에 40주 동안 주 2~3회 아침과 방과 후 총 50분간 추가 운동 프로그램에 참가시켰다.

 연구를 진행한 박주영 교수는 “추가 운동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자아존중감과 행복감이 약 20%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김인수 교수도 운동하는 아이가 행복하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에 거주하는 남녀 초등생 4~6학년 1553명을 대상으로 운동 참여가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운동의 시간·빈도가 높고, 체력이 좋은 아이의 평균 행복지수는 4.83이었다. 보통은 4.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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