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天高皇帝遠 천고황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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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원(元)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제(順帝·1333~1367년 재위) 때의 일이다. 13세기 초 중국 대륙으로 거점을 옮긴 원나라는 순제에 들어서면서 멸망의 기운이 뚜렷했다. 몽골인들의 가혹한 정치로 민심은 흉흉했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절강(浙江)성 태주(台州)·온주(溫州)에서도 일부 한족이 민병을 조직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반원(反元)의 기치를 내걸며 이렇게 외쳤다.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으니(天高皇帝遠), 백성들은 적은데 관리들은 많다(民少相公多). 하루에도 세 차례씩 두들겨 맞으니(一日三遍打), 어찌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기다리겠는가(不反待如何)”라는 내용이었다. 순제를 비롯한 몽골 집권세력들은 결국 반란세력에 쫓겨 다시 몽골 초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중앙 권력이 미치지 않아 지방 토호의 횡포가 심하다’는 뜻을 가진 ‘천고황제원(天高皇帝遠)’이라는 말의 뿌리다. 명나라 시대 민간의 얘기를 모은 한중금고록적초(閑中今古錄摘抄)라는 책에 나온다. ‘천고황제원’은 지금도 지방 권력의 비리를 다룰 때 많이 등장한다. ‘산은 높고 황제는 멀다(山高皇帝遠)’라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중국 왕조시대의 최고 권력인 ‘황제(皇帝)’는 본디 ‘광대하다(大)’는 의미의 ‘皇’과 ‘왕보다 한 단계 높은 존엄한 존재’라는 뜻의 ‘帝’가 합쳐진 글자다. 고대인들은 하늘의 밝은 광명을 ‘皇’이라고 했고, 만물에 생기를 주는 존재로 인식했다. 이에 비해 ‘帝’는 땅에서 만물을 기르는 존재였다. 중국 역사의 시작인 삼황오제(三皇五帝)에 그 뜻이 온전히 살아있다.

두 글자를 하나로 모아 ‘황제’라는 칭호를 만든 사람이 바로 진시황(秦始皇)이었다. 그는 ‘나의 덕은 삼황에 견줄 만하고, 공은 오제를 넘는다(德兼三皇, 功過五帝)’며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자신을 ‘하늘과 땅에서 만물을 키워내는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중국의 안팎을 떠들썩하게 만든 ‘보시라이(薄熙來) 사태’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베이징에서 수만 리 떨어진 충칭(重慶)의 토호였던 그는 온갖 비리와 부패를 일삼고 중앙 권력에 도전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중앙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충칭의 ‘황제’였던 보시라이는 스스로 ‘덕은 삼황, 공은 오제’에 비길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한우덕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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