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꽃이 찬란한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8호 18면

일러스트=강일구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 찾아오는 빈도도 잦아진다. 슬픔도, 기쁨도 날카롭고 선명했던 젊을 때와는 달리 늙어가며 생기는 권태와 피로는 대응이 더 힘들다. 마치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가 된 듯 돈, 권력, 학식, 명성, 가정 모두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시점에 문득 싱싱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면 인생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몸은 비록 늙어가지만 내 눈이 응시하고 내 손이 만져 보는 누군가가 내게 사랑의 묘약을 샘솟게 한다면 잠시나마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회춘을 위해 동첩(童妾)을 얻었던 조선시대 노인네들만 욕할 것도 아니다. 성공한 후에는 잔소리쟁이 늙은 마누라와 이혼하고 말 잘 듣고 보기 좋은 트로피 와이프를 얻는 것이 혹 꽤 많은 남자의 은밀한 소망은 아닐까. 어디 남자만 그러겠는가. 측천무후나 서태후같이 돈과 권력으로 젊은 남자들과 잘 사귀는 여성들을 말하는 신조어인 쿠거(Couger)들도 요즘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얼마 전엔 용돈을 많이 내놓지 않는다는 빌미로 젊은 남자에게 맞아 죽은 미국의 유명한 원로 여기자도 있었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나이 든 남자와 젊은 여성의 관계를 그린 박범신의 은교, 나보코프의 로리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열쇠에는 모두 사랑에 대한 신랄한 회의와 냉소가 숨어 있다. 레베카제인에어순수의 시대같이 나이 든 애인을 사랑하는 젊은이의 시각은 순수하고 낭만적이다. 젊은 남성에게 빠져 살인을 저지르는 나이 든 여배우가 주인공인 ‘선셋대로’나 청년과 사랑에 빠진 70대 할머니가 주인공인 ‘해롤드와 모드’, 아들의 연인을 사랑하는 ‘데미지’ 같은 영화 속의 비극적 상황은 영화니까 용서될지도 모르겠다.

구미에서는 어린 여성에 대한 나이 든 남성의 집착을 로리타 콤플렉스라고 하고, 어린 남성에 대한 나이 많은 여성들의 사랑은 페드라 콤플렉스라고 칭한다. 로리타는 열네 살 소녀에게 반한 현대 중년 남자의 세상에 대한 냉소와 허무주의가 주제고, 페드라는 그리스신화 시대 남편 테세우스의 전처의 젊은 아들 히포리투스를 사랑하는 계모의 집착이 주제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소아성애자(pedophilia)를 일종의 변태 성욕으로 분류하지만, 15세에서 19세까지의 청소년에 대한 성적 취향(Ephebophillia)은 때로 단순한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기 애매할 때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젊은 청년이 나이 든 남자의 애인 노릇을 하는 것이 관습이었다고 말하는 역사가들도 있다. 또 21세기의 조숙한 청소년들은 나이 든 상대와의 사랑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었다고도 주장한다. 고전적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런 관계를 오이디푸스·엘렉트라 콤플렉스로, 융 분석심리학에서는 아버지·어머니 콤플렉스로 설명한다. 부모·자식 같은 애인 관계가 실제 부모와의 관계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랑을 심리학이론과 모범적인 관습의 틀 안에 가두어 놓는다면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나 싶다. 다만 자유분방한 젊은 연인의 옷소매를 놓지 못한 채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며 이용만 당하는 노년은 좀 안쓰럽다. 꽃이 찬란한 것은 필 때 피고, 질 때는 미련 없이 지기 때문이다. 젊은 연인에게 매달려 정작 자기의 가치를 몰라본다면 젊을 때로 돌아갈 수도, 늙을 수도 없이 시간이 정지하고 마는 연옥에 들어설 수도 있을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