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기소중지자 여권발급 '길 텄다'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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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중지자에 대해선 여권발급을 하지 않는 한국 외교통상부의 관행에 제동을 거는 유례가 드문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는 사소한 이유로 형사고발을 당해 기소중지 상태가 된 미주 내 한국 국적자들에 대한 구제 사례가 증가할 전망이다.

서울 행정법원은 최근 남가주의 40대 한인 기소중지자 S씨가 외통부의 여권발급 거부 처분에 대해 제기한 행정소송을 심리한 뒤 외통부 측에 여권발급 거부 처분을 취소할 것을 명령했다. S씨가 기소중지 상태이긴 하나 죄를 짓고 도피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였다.

지난 2007년 투자금 유치를 위해 미국에 온 사업가 S씨는 유럽의 한 운송업체로부터 3억원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고 이 때문에 기소중지자가 됐다.

이후 사업체를 처분하고 LA에 머물던 S씨는 지난해 8월 LA총영사관에 여권 발급을 신청했다.

건강 문제로 종합병원을 찾은 S씨에게 병원 측이 매디캘 서비스를 위해선 여권이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외통부 지침 때문에 여권 발급을 받지 못하게 된 S씨는 한국 검찰 측에 접촉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지 못했다.

결국 S씨는 지난해 10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달 들어 외통부의 여권발급 거부 처분 취소 명령을 내렸다.

이번 케이스를 담당한 이종건 변호사는 "행정법원에서 여권발급 거부 처분에 대해 취소 판결을 내린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며 "이번 판결을 통해 앞으로 사소한 일이나 유죄로 단정짓기 어려운 케이스로 기소중지 당한 미주 한인들이 구제받기가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미주의 기소중지자들은 변호사가 대신 한국에 가서 검찰을 통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후 여권을 발급받곤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 소송 카드를 꺼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현 여권법 제12조 1항은 '장기 2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기소 중인 사람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국외로 도피하여 기소중지된 사람에 대해서 외교통상부장관이 여권의 발급 또는 재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차량 및 주택 등의 이전이나 매각 서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미국에 온 경우나 한국의 휴대폰이나 신용카드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단순 채무 사안마저도 사기죄로 고소되면 기소중지자가 돼 여권 발급을 거부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 대검찰청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형사고소 51만8489건 가운데 18%인 9만6196건 만이 실제 기소로 연결됐다. 고소사건 10건 중 8건은 무혐의나 각하처분을 받은 것이다.

이 변호사는 "기소중지 사안에 대한 면밀한 심의 없이 무분별하게 여권발급을 거부하는 것은 미주 한인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하는 행정편의주의"라고 꼬집었다.

☞기소중지란 기소를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아 사기등으로 형사 고발을 당하면 해당 경찰서에서 출두명령서와 자택방문 등을 통해 출두요청을 하게 된다.

이 때 해외에 체류하고 있어 피고소인의 행방을 확인하지 못하면 '주소지 불문명'에 해당된다. 이 경우, 당국은 도주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판단으로 수배를 내린다.

박상우 기자 swp@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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