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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는 눈이 없다 대신 코가 예민하다 권력·이권 냄새를 잘 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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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평소 언급하던 말 중에 ‘4P의 법칙’이 있다. 사람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로 지위(Position)·명예(Pride)·재산(Property)의 ‘3P’가 있는데, 셋을 다 가지려고 지나치게 욕심부리면 결국 감옥(Prison)에 가게 된다는 뜻이다. 최시중씨는 지난해 3월 방송통신위원장 연임을 앞두고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4P의 법칙에 대해 설명했고, 방통위 내부 회의에서도 같은 경구(警句)를 입에 올렸다. 차면 넘친다는 동양적 지혜이니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권력과 부, 명예와 재산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별개인가보다. 최시중씨는 수억원을 부정하게 챙긴 혐의로 검찰에 불려갔다. 김 전 대통령은 아들이 돈과 관련된 죄를 지어 감옥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망연히 지켜보아야 했다. 최시중씨가 공·사석에서 자주 입에 올린 다른 말로 ‘녹명(鹿鳴)’이란 게 있다. 중국 고전 『시경』에 나오는 말이다. 사슴은 좋은 풀밭을 발견하면 혼자 먹어 치우지 않고 울음소리를 내 동료 사슴들을 불러 모은다는 의미다. 소통이나 우애를 강조한 것이겠지만 지금 와서 보면 소리를 냈더니 사슴은 안 오고 하이에나·자칼 같은 불길한 짐승들만 꾀어든 셈이 됐다.

 역시 권력자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신세인가. 어제는 일본 정계에서 20년 넘게 킹메이커로 군림해 온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가 담장에서 안쪽(교도소) 아닌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데 성공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됐으나 1심 재판에서 무죄가 났다. 오자와의 죄목은 정치자금 관리단체에 돈을 건넨 내역과 용처를 법대로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소된 후 ‘실질범’과 ‘형식범’을 구분하는 방어논리를 폈다. 자신은 죄가 있더라도 어디까지나 형식범이라는 논리였다. 실질범은 살인·방화처럼 눈에 보이는 해를 입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다. 그러나 형식범은 아무도 없는 벌판에서 속도 위반으로 차를 모는 것처럼 위법이라도 실질적인 피해는 끼치지 않은 이다. 자금 내역 부실 기재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으니 무죄라는 주장이다.

 권력과 돈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논란거리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돈에는 눈이 없는 대신 아주 예민한 코가 숨겨져 있다. 권력의 냄새, 이권의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코다. 평소 4P의 법칙에 더해 내명(內明·마음을 깨끗하게 갈고닦음), 이순(耳順·생각이 원만하여 어떤 것도 들으면 바로 이해됨), 하심(下心·자신을 낮추는 마음)을 강조하던 최시중씨다. 수천 년에 걸친 유교·불교의 주옥 같은 지혜도 결국 방어막이 돼주지 못한 걸까.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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