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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졸업반 증후군' 극복하는 길

중앙일보

입력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사이, 이맘 때부터 미국 고교 졸업반 학생들 사이에서 서서히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숙제를 해가지 않는다거나 학기말 시험 공부에 대한 열의를 잃는 것이다. 그러다가 대학 특차 합격 통지서가 발송되기 시작하는 12월 중순이 되면 증세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러나 졸업반 증후군이라는 묘한 현상이 만연하는 시기는 1학기 성적이 나온 후인 1월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2001년 고교 졸업 예정자 3백4만9천 명의 상당수가 시간을 낭비한다. 고교 졸업반에 관한 책 ‘크로싱 더 스테이지’(Crossing the Stage)
를 집필중인 교사 낸시 파우스트 사이저에 따르면 하버드大를 갈 예정이든, 전문대로 진학할 예정이든, 직업 전선에 뛰어들 예정이든 학생들은 ‘빈둥거릴 면허’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메릴랜드州 에섹스의 이스턴 공고 졸업반 제임스 다크(17)
는 그렇지 않다. 다크는 올 연말 디지털 뮤직에 관한 독자적인 연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는 학교 밴드의 공연을 담은 CD를 내놓고 그 과정을 논문으로 작성하며 CD 제작 가이드북을 디자인하고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에 관한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게 단순화한 10분짜리 발표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리노이州 오로라 소재 일리노이 수학·과학 아카데미의 졸업반인 사미나 샤이크(17)
도 일과가 빡빡하다.

그녀는 해부학·생리학·미생물학·물리학 등 7개 과목을 수강한다(표준은 5개 과목)
. 또 그와는 별도로 시카고의 한 의학연구소에서 난소암 검사 개발을 위한 연구활동을 돕고 있다. 샤이크는 졸업반 학생들이 한 해를 빈둥거리다가 졸업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며 “신나게 논다 해도 곧 따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크나 샤이크 같은 학생들은 미국 전역의 고교에서 일기 시작한 졸업반 교과과정 혁신의 역할 모델이다. 美 남부지역 교육위원회의 진 바텀스 수석 부회장은 “졸업반 수업이 부가가치를 부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지루해하고 들뜨게 된다”고 말했다. 그들의 흥미를 계속 유발하는 방법은 고교생활의 성공이 대학과 직장 생활의 성공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사이저는 “고교 졸업반 학생들을 한햇동안 휴식을 취하는 청소년이 아니라 실제 직업에서 유능한 근로자가 될 준비가 돼 있는 성인으로 대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 미국의 상당수 10대들은 진학이나 취업에 필요한 기능과 기술을 갖추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대학 신입생의 약 4분의 1이 중도 탈락하며 약 30%는 읽기나 쓰기, 또는 수학의 보충 과정을 수강한다. 곧장 직업전선에 뛰어든 학생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수년간 어렵지 않은 수준으로 수업을 받았으며 졸업반이 돼서도 취업에 필요한 특별한 도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초 美 교육부는 고교 졸업반의 교과 과정을 향상시키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편성했다. 셰릴 케인 특별위원장에 따르면 도움이 절실한 졸업반 학생들은 가난하거나 소수민족 출신의 청소년들이며 그들은 학교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잘못 생각한다.

이스턴 공고에서는 학교와 직업의 연결이 교과과정의 중심이다. 그 학교는 과거 판금(板金)
과 키펀칭만 가르쳤지만 로버트 케머리 교장 부임 이후 달라졌다. 신입생들은 보건·컴퓨터 디자인·엔지니어링·정보기술 등 10가지 전공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한다. 졸업반 학생들은 매일 전공과목 3학점에 해당하는 수업을 받으며 인턴 과정에 참여한다. 또 첫 3년간 배운 기술(미국 고교는 4년제)
을 실제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특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케머리는 “그런 프로젝트로 학생들은 교육과 직업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은 기술 분야의 근로자가 부족하자 직접 졸업반 학생들의 교육에 나섰다. 캘리포니아州 프레스노의 어드밴스트 리서치 & 테크놀로지 센터는 두 개의 학군과 기술업체들의 컨소시엄에 의해 합작으로 설립됐다. 여기서 제공하는 프로젝트 기반의 교과과정은 고교 3∼4년생들을 대상으로 하며 대학 진학이나 후원사 취업을 목표로 한다.

학생들은 시간의 반을 정규 학교에서, 나머지 반을 센터에서 보내며 전자통신에서 생체의학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중 한가지와 씨름한다. 캘리포니아州 클로비스의 조너선 밀러(17)
는 후자를 택했다. 밀러는 응급의학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중이며 현지 병원에 근무하는 조언자를 배정받았다. 그 조언자는 밀러에게 응급실에서 10시간 야간 근무를 설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밀러는 “시간을 좀더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그저 책을 읽고 연습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부 州들은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도 마련해 놓고 있다. 사미나 샤이크가 다니는 4년제 공립 기숙사 학교인 일리노이 수학·과학 아카데미가 바로 그런 곳이다. 텍사스州는 우수한 고교 3∼4학년생들을 노스 텍사스大의 텍사스 수학·과학 아카데미로 보낸다. 학생들은 함께 생활하며 대학에서 수업을 받는다. 과학자들과 함께 일할 기회도 있다. 美 항공우주국(NASA)
에서 로봇공학 프로젝트에 참여해온 고교 졸업반 크리스 에젤(18)
은 “이 프로젝트로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가 희망하는 다음번 기착지는 조지아 공대다.

이런 프로그램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고교를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는 한 졸업반 증후군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리언 보트스타인 바드大 학장도 현 제도를 노골적으로 비평해왔다. 바드大가 매사추세츠州 그레이트 배링턴에서 운영하는 사이먼스 록大는 고교 1학년 이상이면 입학이 허용된다.

보트스타인은 요즘 청소년들이 현대적 고교가 처음 세워진 1백 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학문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좀더 성숙했다고 믿는다. 따라서 고교는 청소년들에게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좀더 제공하고 성인 조언자들과 함께 일하며 나이든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도록 함으로써 그같은 변화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보트스타인은 “좋든 싫든 결국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옳다면 졸업반 증후군의 치료책도 나올지 모른다.
(Barbara Kantrowitz, Pat Winger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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