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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몸싸움 방지법’이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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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임종훈
홍익대 교수·헌법학

18대 국회가 24일 마지막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에 합의했다가 ‘몸싸움방지법’에 대한 이견으로 무산됐다. 국회가 모처럼 여야 합의로 고질적 병폐인 ‘몸싸움’을 방지하기 위한 법개정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우리 국회의 선진화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몸싸움방지법 때문에 국회가 파행하게 됐을까. 그 합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지 않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개정 내용 중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제한한 내용이나 새해 예산안의 자동회부제도 및 의장석·위원장석의 점거를 금지하고 국회 회의장 출입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한 것 등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위원회에서 여야가 충돌하는 쟁점법안에 대해 여야 동수로 안건조정위원회(6인)를 구성해 논의한 다음 조정안을 의결하기 위해서는 조정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한 것은 문제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본회의 심의도 문제가 있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는 안건에 대해서는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무제한 토론할 수 있도록 했다.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본회의는 ‘1일 1차 회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무제한 토론 종결 선포 전까지 산회하지 아니하도록 했다. 무제한 토론의 종결은 더 이상 토론할 의원이 없거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 경우 또는 무제한 토론 중 회기가 종료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상의 핵심은 무한토론과 절대다수의 원칙이다. 기존의 과반(50%)이 의사결정의 기준이 아니라 절대다수(60%)가 기준이 된다. 절대다수가 결정하지 못할 경우 토론은 사실상 무한대로 허용된다.

 여기서 문제는 첫째로 쟁점 법안을 처리할 때 3분의 1 이상의 의석을 확보한 소수파의 동의 없이는 위원회에서 쟁점 법안의 처리가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이다. 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소수파의 입장을 최대한 보장한 획기적 조치다. 다수파가 원하면 문제의 법안을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청은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결국 어느 쪽도 절대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19대 국회에서 쟁점법안 처리는 불가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본회의에서 합법적인 의사진행방해(filibuster)를 인정한 것도 소수파의 발언권을 인정한 획기적인 조치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이 역시 소수파가 5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한 경우 본회의 단계에서 모든 안건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다는 결과를 낳게 된다. 19대 국회의 경우 야당이 5분의 2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5분의 3 이상의 의석을 필요로 할까. 5분의 3이라는 숫자는 미국의 연방 상원에서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의사진행방해(filibuster)를 저지하기 위해 필요한 상원의원 수다. 미국의 연방 하원에도 이러한 제도는 없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미 연방 상원에서도 본회의 단계에서만 이러한 제도가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국회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이중, 삼중으로 위원회 단계와 본회의 단계에서 소수파를 보호하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 상원과 우리 국회는 많이 다르다. 우리의 경우 미국 상원처럼 의원 개개인의 독자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당의 결정에 따르는 당론 투표가 보편적이다.

 이런 우리의 정치문화에서 과연 이러한 제도가 제대로 운영될지 의문이다. 좋은 취지의 제도라도 환경이 다르면 부작용을 낳기 쉽다. 더욱이 미국 상원식 제도는 너무 현실과 맞지 않는다. 소수파의 보호에 치중한 나머지 다수결의 기본원칙이 무시되고, 결과적으로 식물국회가 될 것이란 우려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임종훈 홍익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