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5월의 저주’가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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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권석천
논설위원

Ⅰ. 1997년 5월 15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대검찰청에 출두했다. 중앙수사부 3과장 이훈규(현 CHA 의과학대 총장) 검사는 수사기록과 성경을 들고 조사실에 들어갔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기독교 신자 현철씨에게 “기도부터 하자”고 했다. 그러곤 구약성서의 ‘욥기’를 읽었다. 현철씨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였다.

 약식 예배가 끝난 뒤 조사가 이어졌다. 현철씨가 김 대통령을 ‘아버님’이라고 지칭하자 이 검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님, 아버님 하지 마세요. 나한테는 대통령이고 국가원숩니다. 지금부터는 대통령이라고 하세요.” 현철씨는 이틀 뒤 구속 수감됐다.

 Ⅱ. 그로부터 정확히 5년 후인 2002년 5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가 구속됐다. 홍걸씨는 “부모님께 한 말씀 해달라”는 요청에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구치소로 향했다. 그 다음 달엔 홍걸씨의 형인 홍업씨가 구속됐다.

 ‘5월의 저주’가 멈춘 것일까. 2007년 5월 대통령(노무현)의 가족이나 측근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2년 후인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 위에 섰다. 이들 수사는 3~4월 시작돼 5월에 클라이맥스를 이뤘다. 배반의 가시를 품은 붉은 장미가 화려함을 자랑하는 시기다.

 대개 5년을 주기로 대통령과 그 주변에 불행이 이어지는 까닭은 5년 단임제에 있다. 개헌을 하지 않는 한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도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을 선출하는 임기 5년차에 들어서면 정권 교체를 준비하는 대청소가 개시된다.

 Ⅲ. 이 장엄한 대하서사극에서 검찰도 조연일 뿐이다. 청와대는 턱밑까지 차오르는 수사의 수위에 배신감을 느낄 테지만 검찰총장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분명한 점은 수사 내용과 수사를 받는 실세의 뒷모습을 통해 각 정권의 특징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청와대에 있던 때 기업들 돈을 받은 혐의였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오랜 후원자(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에게서 재임시절 로비 자금을 받았는지가 쟁점이었다.

 ‘MB(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왕차관’으로 불려온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이 두 명의 실세는 정부 출범 이전부터 검은돈에 손을 댄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대선 여론조사에 썼다”는 최 전 위원장의 주장이 맞는다면 개발사업 시행사의 돈까지 써가며 당선에 기여함으로써 실세 자리를 굳힌 셈이 된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전문가들이 엉뚱한 곳을 헤집고 다니는 사이 실세들은 뒷돈을 챙기고 있었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선 또 다른 실세와 제2, 제3의 개발사업이 수사 대상에 오를 것이란 풍문이 들려오고 있다.

 Ⅳ. 연이은 실세 비리에서 얻게 되는 교훈은 대통령 후보뿐 아니라 후보 옆에 어떤 이들이 있는지도 눈여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 소홀했던 언론의 책임이 크다. 2007년 대선 때도 기자들은 유력 후보를 따라다니며 후보의 발언이나 관련 사건을 경마식으로 전달하는 데 급급했다. 국가대표 야구팀을 짜는데 감독만 바라본 꼴이다. 5년간 그와 손발을 맞출 1루수와 2루수가 누군지, ‘실세 후보’인 그들에게 문제의 소지가 없는지 따지지 않았다. 인터넷 동영상 “1루수가 누구야” 수준에도 못 미쳤던 것이다. 그 결과 캠프 속 굶주린 늑대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제 곧 5월이다. 국민은 앞으로 이어질 검찰 수사를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며 다음 대통령감을 고르게 될 것이다. 후보들이 캠프와 가족의 도덕성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어떻게 노력하느냐를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올 5년 후도 그리 밝아 보이진 않는다. 정치인들의 비극은 최 전 위원장이 도와달라는 시행사 대표에게 나무라듯 내뱉었다는 말, 그 언저리에 있는 게 아닐까. “왓투(What to·무엇을 할까)는 아는데 하우투(How to·어떻게 할까)는 모른다”는.